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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노 Apr 24. 2022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이유

나름 심사숙고해서 결정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나는 임신, 출산, 육아가 당연한 여자의 의무라 생각하는 세대와, 이는 오롯이 이를 감당해야 할 여성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세대 사이에 어중간하게 끼여 있는 세대다. 학교에서는 네가 충분히 공부를 잘한다면 사회적인 성공도 얼마든지 거머쥘 수 있다, 사회와 세상을 이끄는 21세기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배웠던. 그럼에도 '여자에게 최고의 직업은 아무래도 교사가 아니겠냐. 그래야 애 낳고 길러도 불이익이 없지.'라는 충고 아닌 충고를 들었던. 


자신이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아이를 낳을지, 낳지 않을지에 대해서는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직업선택과 배우자 선택의 기준 또한 이 선택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낳기로 결정한다면, 엄청난 크기의 리스크와 손해를 안고 시작한다. 커리어의 성장 측면에서는 큰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 몸에도 아무래도 무리가 될 테고. 임신, 출산은 그래도 기간이 정해져 있지만, 육아는?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내 멘털로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확실하게 답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낳지 않기로 결정한다면, 더 나이가 들어서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나와 사랑하는 배우자를 닮은 아이를 낳고, 함께 기르며 누릴 수 있는 기쁨과 성장이 아쉽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혹시 나도 이웃집 아기를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중년의, 노년의 여성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 또한 두렵지 않은 선택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엄마가 되어보겠다고, 용감하게(?) 결단한 이유는 별다른 것은 아니었다. 


하나. 남편이 다정다감하고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남편은 집안일도 잘하고 아이도 잘 본다. 내가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그 일생일대의 고민을 하던 중 조카가 태어났다(신랑 입장에서는 처조카가 되겠다). 가끔 친정에 놀러 갈 때마다 조카를 꿀 떨어지는 눈으로 바라보고, 조카를 안아보고 예뻐해 주는 남편을 볼 때마다 안심이 되었다. 혹시 아이를 낳는다는 다소 무모한 결정을 하더라도, 남편이 같이 감당해 주겠지, 라는 생각. 든든한 아군이 있다는 생각. 그 생각이 교착 상태에 있던 나의 고민을 한 걸음 나아가게 해 주었다. (그는 '여보는 그냥 낳기만 해, 내가 기를게.'라고 말하기도 하기는 하였으나...)

 

둘. 알 수 없는 호기심 때문에.


궁금했다. 나와 남편을 닮은 아이의 모습은 어떨지. 모성애나 희생정신이 정말 자연스럽게 생겨나는지(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무리 마음을 뒤져보아도 잡히지가 않는 마음이고 개념인데). 엄마가 된 나는 아이를 낳기 전보다 과연 더 성숙한 인간이 될 것인지. (더 성숙해진 것 같기는 한데, 더 못나진 면도 있고.. 음)


셋. 성경에 쓰여있길래.


여러 번 고백하지만, 나는 막 신실한 크리스천은 아니다(가나안 성도라고, 교회에 나가지 않는 불성실한 신자이다). 하지만 일생일대의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조언을 구하되, 아무래도 최고로 권위 있는 그 누군가나 그 무언가로부터 답을 구해봐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굳이 구절을 뒤적일 필요도 없이, '낳는 게 답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라고 하지 않으셨던가. 




그럼에도 망설여지기는 했다. 직장에서 받을 불이익의 형태라는 게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았다. 또 하나 걱정되었던 건, 내 안에 남아있던 자기혐오였다. 아이가 내가 혐오하는 내 모습을 닮으면? 내가 싫어하는 내 부족함이 아이에게서 보인다면, 나는 그 아이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 이어졌다. 


그럼에도 내가 고민으로 답을 낼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싶었다. 결정한 후에는 가급적 리스크를 줄이면서, 정서적, 신체적 어려움을 최소화하면서 임신, 출산, 육아라는 프로젝트를 잘 수행해 내는 것이 중요하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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