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단절 여성들의 복직을 지켜봤다. 기분이 씁쓸했다.
내 첫 직장은 S그룹 계열사였다. 나는 서른 살이었고, 대리 2년 차였다. 진짜 사회인이 된다는 설렘과 어떻게든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으로 가득했던 시기였다.
입사하고 한 3개월이 지났을 때였나. 회사에서 '에이전트'라고 하는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 지원 프로젝트라는 걸 했다. 육아로 인해 일을 그만두었던 여성들에게 재취업의 기회를 주기 위해 진행한다며 언론 홍보도 했던 것 같다. 하루에 4시간만 일하는 반일제 근무형태였다.
단순한 사무직 업무를 맡길 예정이었던지라, 채용담당자는 처음에 지원자들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웬걸. 지원서류를 받아보니, 지원한 분들의 스펙이 너무도 훌륭했다고 한다. 해당 직무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물론, 학벌, 외국어까지 두루두루 갖춘 인재들이 많아서 최종 합격자를 추리는 것이 어려웠단다. 경쟁사에서 핵심부서 팀장을 맡았던 분들도 있었다(최종 합격자 분도, 경쟁사의 영업마케팅 부서 팀장님이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들의 첫 입사 날을 기억한다. 3분의 에이전트 분들은 어딘지 모르게 회사 사무실 풍경과는 어딘지 이질감이 드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갖추어 입은 정장은 겉돌았고, 주눅이 들어 있었다. 내 느낌에는 그랬다. 같이 업무 할 기회가 주어지면 더 친절히 대해드려야겠다는 주제넘은 생각도 들었다.
옆팀 팀장님이 에이전트 분 중 한 분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아이고, 예전에 날아다니던 분이 이렇게 단순한 일을 하게 되셔서 좀 답답하시겠어요." 에이전트분은 답했다. "이렇게 회사에 와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정말 너무 좋아요. 아이 등 하원 시키면서 이렇게 회사 와서 일할 수 있는 게 어디예요."라고. 건너서 듣자 하니, 아이를 낳고 봐줄 사람이 없어서 떠밀리다시피 휴직을 했고, 복직하려고 보니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고 한다. 그녀의 경우, 팀장이어서 오히려 복직하기가 힘들었다. 팀장 자리가 계속 공석일 수는 없으니, 누군가 그 자리를 채웠고, 현 팀장은 예전 팀장이 같은 팀에 복직하는 걸 껄끄러워했다고 한다. 다른 팀에 들어가기도 애매했고. 원래 급여와 직급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하니 좀 치사한 마음도 들었고.
그렇게 퇴사하고 나니 나중에는 동네 아르바이트 자리도 쉬이 구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대졸 공채로 열심히 대기업 본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던 그녀는, 카페 POS를 다룰 줄도 몰랐고, 택배 상하차를 할만한 체력도 없었으니까.
그분들께 좀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주제넘은(?) 생각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에이전트님들과 소통을 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간단한 업무 요청을 하면, 그들은 번개와 같은 속도로 회신했다. 그들은 화장실도 자주 가지 않고 엄청난 집중력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그들끼리 모여서 점심을 먹었다.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그들이 모처럼 점심을 먹고 티타임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사내 카페에서 환하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그녀들은, 더 이상 피곤하고, 우울해 보이던 입사 첫날의 그녀들이 아니었다. 조금 더 밝고, 당당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덜컥, 겁이 났다. 아이를 낳아서 기른다는 건 무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멋지고 당당했을 커리어우먼들은 왜 입사 첫날 그렇게 생기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지금 시대에 아이를 낳아서 기른다는 건, 저렇게 당당히고 멋진 커리어우먼들을 우울하게 만들어버릴 만큼 큰 일이구나, 싶었다.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입사 첫날의 그녀들처럼 생기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 배우자와 아이들이 보지 않기를 바라며 쓰는 글입니다. 그 후 결혼을 한 것, 두 아이를 낳은 것, 열심히 워킹맘으로 일하며 육아하는 삶에 후회는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두려움은 크고, 깊고, 생생했습니다. 저와 같은 고민을 할 수도 있을 2030 직원들을 위해 그때의 마음을 기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