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3년에 변호사가 되었고, 2014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회사에서 사내변호사로 일했다. 아이를 갖기 전에도, 아이를 낳은 후에도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말이다(중간에 회사를 옮기기도 했고, 직무가 일부 변경되기도 했지만, 큰 틀에서는 비슷했다). 그리고 나는 아이를 갖기 전에도, 아이를 낳은 후에도 항상 내가 가진 것의 100% 또는 120%를 활용하면서 일했다. 나의 평가자들과 나와 같이 일을 했던 사람들 중 일부는 내 능력을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함께 일했던 어느 누구도 내 '열심'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다.
지금 다니는 회사로 이직할 때, 이곳의 팀원 중 한 명이 내 이전 직장 동료에게 레퍼첵을 했단다. 전 직장동료가 전화가 왔었다고 알려주면서 말했다. '그분께도 그냥 있는 대로 말했어요. 변호사님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요.'라고 했다고. 10년 가깝게 직장생활을 했지만 평고과보다 낮은 고과를 받은 적은 없었다. 상위고과를 받은 적도 꽤 되었다. 나는 그게 요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히 열심히 했다. 회사 사람들이 '일 잘한다' '믿고 맡길 수 있다'는 말을 해주는 것이 내 삶의 원동력이었으니까. 밤 11시, 12시까지 야근을 하는 것도, 일상 업무에 더해 프로젝트성 업무가 주어지는 것도, 해외출장이나 지방 출장을 자주 다니는 것도 기꺼웠다. 아파서 병원에 실려가서도 노트북을 켰다.
난 이 정도로 열심히 했으면, 육아휴직을 안 쓰고, 시터님께 아이를 맡기면, 직장에서의 내 평가는 아이를 낳아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임신을 하고, 출산휴가를 신청하고, 짧게나마 육아휴직을 쓰게 되자 평가는 조금 달라졌다.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상사들이 꼰대여서, 가부장적인 사람들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팀장님도 워킹맘이었고, 팀원을 아껴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임신한 몸으로도 충분히 열심히 했다는 걸 심정적으로 이해하고 응원해 주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보는 회사의 시선이 달라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회사의 S급 직원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능력이 하나 없어졌기 때문이다.
Availability: 한국기업의 S급 직원들은 이것을 갖추고 있다.
내 경험이 제한적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으나, 나는 (전통적인 의미의) 한국 기업에서 S급 직원이 갖추어야 할 능력 중 하나가 availability 인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 연락 가능한 상태로 있을 것. 임원이 찾을 때, 팀장이 찾을 때 "네, 부르셨습니까?"하고 신속히 응답할 것. 이 능력은 말단 팀원일 때도 중요하지만, 팀장 등의 보직장, 간부가 될수록 중요하다. 위로 올라갈수록(?) 임원에게 보고할 일이 많아진다. 임원은 보통 여러 부서의 의견을 동시에 청취하여 결정한다. 임원 보고에는 간부는 필히 참석해야 한다. 보고서 준비, 유관부서 소통 등도 그전에 차질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서부터 엄마인 나와 엄마가 아닌 나는 달라진다. 엄마인 나는 시간이 없으니까. 예전에는 야근을 좀 더 해서 깔끔하게 마무리했을 일을 중간에 끊고 퇴근해야 한다. 아이를 봐야 하니까. 예전에는 휴가기간에만 몰아 썼던 연차를 회사 일정이 바쁠 때도 내야 한다. 아이가 아프거나, 학부모 면담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퇴근한 후에는 예전처럼 업무연락을 받을 수 없다. 옆에서 아이들이 부르니까. 좋은 회사라면, 이런 나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응당 합리적으로, 나보다 더 available 한 직원과 일하는 걸 더 편하다고 느낄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이슈가 하나 터진 경우, 대표는 임원에게, 임원은 간부에게 연락을 할 것이다. 그런데 간부가 육아 중이라서 전화를 받지 못한다? 전화를 받아도 대화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다? 그러면 그 윗사람은 고민할 것이다. 이 사람이 간부로 적합한가. 아니면 교체하는 것이 본인 입장에서 일하기 편한가.
업무시간의밀도와 질을 높인다면, 줄어든 availability를 상쇄할 수 있을까?
나는 주변에서 정말 압축적으로 일하는 워킹맘들을 많이 봤다. 어떤 선배는 업무시간 중에는 화장실도 잘 가지 않았다. 어떤 선배는 분당 천타가 넘을 것 같은 빠르기로 두두두두, 자판을 두들겨댔다. 어떤 워킹맘 선배는 새벽에 일어나 업무와 관련된 공부를 개인적으로 하고 출근했다. 회사의 자료 반출 승인을 받아 계약서며 자료를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아이들을 재워놓고 새벽에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자주는 아니었지만, 가끔 그렇게 했다. 예전과 비슷한 퍼포먼스를 내고 싶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보직장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워킹맘들이 꽤 되었다.
나 또한 아이 낳고 한참 열심히 회사일에 매진할 때도, 애엄마라는 이유로 상사와 다소 씁쓸한 대화를 나눈 적도 있었다. "김 변호사 애들은 누가 봐?""이모님이 저 퇴근할 때까지 봐주시고, 제가 픽업해서 재웁니다.""아직 애들이 어려서 고생이 많지? 아무래도 퇴근시간 이후에 연락하기가 좀 그렇더라고. 급하게 물어볼 거 있으면 N한테 물어보면 되나?"(대체자를 지정하는 게 좋겠다는 의미다) 같은 대화 말이다.
나는 내가 아이들의 주양육자라는 전제 하에는 S급 직원이 되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워킹맘이라면 그런 무력감에 한두 번은 빠져보았으리라. 모래주머니를 차고 올림픽에 나가야 하는 그 어떤 막막함을. 누군가에게는 가능한 일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노력만으로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도 회사에서 일하는 내가 좋고, 일 욕심이 난다면. 인정받고 싶다면. 그래도 엄마가 되었다면 어쩔 수 없이 적당히 내려놓아야 한다. 주어진 여건에서의 최선을 고민하고, 더 효율적으로 일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가운데에서 균형점을 잘 찾아가고 싶다. 아직 정답도, 내 답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내 앞에 놓인 업무 하나씩을 잘 처리해 가면서 지혜를 구해야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할 때는 우선 다음 한 발을 잘 내딛으라고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