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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노 Jan 25. 2022

애기 엄마, 제발 잠 좀 잡시다.

병원에 입원해서도, 커리어를 놓고 싶지 않았던 그녀의 최후  

2018년 1월쯤이었다. 첫째는 아직 24개월이 채 되지 않은 세 살이었고, 둘째는 아직 내 뱃속에 있을 때였다. 아마 내가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감을 느꼈던 때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공부 말고는 별다른 재주가 없었다. 좋은 직장, 좋은 직업이라는 것은 내 가난한 정체성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열심히 공부하면 어느 정도 성과가 나왔고, 열심히 일하면 그래도 회사에서 인정받고 다닐 수 있었다. 내 인생에서 내 뜻대로 굴러가 주는 몇 안 되는 것들이었다. 그랬다. 내가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아기 엄마가 된 순간 더 이상 회사에서의 입지는 같을 수 없었다. 회사라는 왕국에서 2등 시민으로 강등된 기분이었고, 그건 아무리 애를 써도 잘 만회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둘째가 생겼다. 당시 사업부의 일상적인 법무 업무를 맡고 있었다. 일상적이라고 해도, 업무강도는 결코 낮지 않았다. 부른 배를 안고 사무실과 법정을 오갔다. 하지만 부족했다. 더 인정받고 싶었고, 승진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여자라서, 애엄마라서, 너는 여기까지야. 그렇게 내 커리어에 한계를 긋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겁 없이 새로 시작하는 대형 프로젝트에 뛰어든 것은.


사수가 프로젝트 하나 시작할 건데, 같이 하려냐고 물었다.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배운 적 없는 첫째 육아는 어렵고 힘들었다. 부풀어 오는 배는 무거웠다. 아이를 돌봐주시는 시부모님은 감사했지만 솔직히 불편했다. 이미 하고 있는 일도 결코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프로젝트, 하고 싶었다. 아기 엄마가 아닌 예전의 나라면 응당 그리했을 것이었다.


프로젝트에 올라타자 처음에는 너무 좋았다. 예전처럼 일에 전력 질주하는 느낌이 좋았다. 애엄마가 아니라, 애물단지 직원이 아니라, 다시 회사의 주류가 되어 일하는 기분이 들었다. 병원에 실려가기 전까지는 그랬다.

 



몇 주째 기침이 계속 났다. 산부인과에 갔더니 감기인 것 같으나, 독한 약은 쓸 수 없다며 콜드 시럽을 처방해 주었다. 그래도 기침은 잦아들지 않았다. 회사일을 끝내고 가끔 야간진료를 하는 병원에 가서 수액 주사를 맞았다. 그래도 증세가 나아지지 않았다. 기침이 점점 심해져서 며칠 동안 제대로 자지 못했다. 가래가 끓으면 모아서 뱉고, 10분이라도 더 자려고 사탕을 먹으면서 잠을 청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첫째를 재우고 얼핏 선잠이 들었다. 기침이 나서 깼다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고, 쉭쉭- 하고 이상한 숨소리가 났다. 다급하게 자고 있던 남편을 두드려 깨웠다. 남편이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집 근처 큰 병원 응급실로 차를 몰았다. 2차 병원이라 산부인과와 호흡기내과 협진이 되지 않는다고,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자 의사가 네블라이저를 물려주었다.(그때는 코로나 시국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응급실에 있다가 입원실로 옮겨졌다. 다음 날이 밝자 회사에서는 계속 업무전화가 왔다.


- 실사 자료 중 빠진 자료가 있는 것 같아요, 확인해 주세요.

- 날인본은 어디서 받아요?

- 혹시 휴가세요? 간단히 짧게 여쭤볼 것이 있는데.

- 상대방이 계약서 수정해서 보냈는데, 그냥 이대로 해도 되나요? 등등


급한 전화는 받고, 급한 메일은 회신했다. 비교적 덜 급한 연락에는 지급 답변이 어려우니, 다른 담당자를 배정받으셔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프로젝트 업무는 중간중간 챙겨야 했다. 히스토리를 다 아는 사람이 우리 팀에서는 나 밖에 없었으니까.


그렇 입원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천식이라고 진단을 받았고 증세가 완화될때까지 입원하라는 말을 들었다. 프로젝트 중반을 도는 시점이었고, 영업양수도 계약서는 최종본 확정하여 도장 찍는 날이었다. 밤 11시 50분에 협상이 끝났다며 메일 보냈으니까 확인해 달라는 전화가 왔다. 6인 병실의 다른 침대 사람들은 모두 자고 있었다. 링거와 호흡기를 연결하고 있었던 터라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음량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알았다고 말했다. 노트북을 나름 조심해서 켰다. 우우웅- 부팅 소리가 꽤 크게 들렸다.


"애기 엄마! 잠 좀 자자! 대체 지금 이 시간까지 뭘 하는 거야!!"


나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던 대각선 맞은편 침대 환자분이 참다못해 소리를 질렀다.


"죄송합니다. 10분 내로 끝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잠 좀 자자, 제발."

"네, 죄송합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중요 조항 위주로 확인하고, 꾸역꾸역 컨펌 메일을 보낸 후 노트북을 껐다. 어둑어둑한 병실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 생각했다. 그러게, 나는 뭐 하고 있는 걸까. 아기 엄마면서, 임산부면서, 본분을 망각한 대가를 받는 것일까. 커리어를 잘 관리하고 싶다는 건 그야말로 과욕이었던 걸까. 쿵쿵, 태동이 배를 울렸다. 그게 기뻐야 하는데, 기쁘지만은 않았다. 그때는 마치 내 인생이 선로를 벗어나 모르는 길로 질주하는 기차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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