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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노 Jul 30. 2022

커피 값 한잔 아껴서 후원하라고요?

그 값어치만큼, 제대로 일해주실 자신 있나요?

지하철 입구를 나설 때마다 짙은 하늘색을 조끼를 입은 사람들을 만난다. 구호단체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때로는 난민을 위한, 때로는 아동을 위한 구호활동을 하는 단체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이들 곁에는 스티커를 붙일 수 있는 패널과 기부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는 작은 부스가 있다. 하늘색 조끼를 입은 청년들은 나에게 삶의 터전을 잃고 표류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묻는다. 식량, 물, 옷, 집 등등이 선택지에 있다. 처음에는 '물'이었고, 최근에는 답이 '여권'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나의 작은 기부가 이들에게 하루치, 3일 치 식량이 될 수 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한다.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기도 했고, 좋은 일을 한다는 사람들이니 스티커 붙이는 정도의 참여는 했지만, 출퇴근길에 매일 같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슬슬 지겨워졌다. 슬슬 스티커를 붙이는 참여도 하지 않게 되었다(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이미 기부를 하고 있기도 했다).




외근을 갔다가 회사로 복귀하던 길이었다. 평소 다니지 않는 역에도 예의 하늘색 조끼를 입은 청년들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똑같은 패널을 들고 똑같은 멘트를 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조직적인 마케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을 돕는 행위, 인도주의를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자본주의의 냄새가 났다. 


건별로 금액을 받아가는 구조일까? 이래서 이 사람들이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걸까? 그런 생각부터 드는 걸 보니 내가 참 찌들었구나, 닳고 닳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 그러지 마시고 그냥 딱 1만 원, 소액으로 시작하셔도 돼요. 하루 한잔 커피값만 아끼면 아이들에게 정말 큰 도움을 줄 수 있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청년의 미소는 맑았고, 눈빛에는 악의가 없었다. 그럼에도 나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말해버렸다.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는데, 아이스라떼 한잔 정도는 마실 수 있잖아요. 제가 정말 절실한 하루의 위안을 포기하고 이곳에 기부하면, 정말 제대로 사용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청년은 조금 곤란한 표정을 했다. 


"OO동에 큰 빌딩을 지었는데 자금출처 소명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어요. 임원진의 성희롱 파문이 있었는데 침묵했다는 말도 들었고요. 임원분들은 비즈니스 클래스에 전용차량을 마련해 움직이신다고도 들었거든요. 물론 근거 없는 낭설일지도 몰라요. 사실과 다른 소문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 커피값을 다 포기하고 어딘가에 후원해야 한다면, 그런 구설수에서 자유로운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인상이 좋은 청년이었는데.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는지도 모르는데. 그 청년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기부를 했다가 이런저런 구설수에 휘말리는 것이 싫어서 기부를 그만두었던 구호기관에는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청년은 선선히 물러섰다. 


그 이후에도 여전히 그 조끼를 입고, 사람들의 기부를 독려하는 사람들을 길거리에서 만난다. 하루 한잔의 커피보다 중요한 일을 하는 기관들이 실제로 있고, 이 사람들도 선량한 사람들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생각한다. 정말 내 커피값을 포기하고 기부를 한다면, 호화 의전, 성희롱, 배임 같은 이슈가 전혀 없는 곳이었으면 한다고. 절실한 무언가를 포기한 만큼 그만큼의 보람을 느끼고 싶다고. 캠페인에서 사람들의 결핍만을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도움으로 인해 나아지고, 행복해진 사람들의 삶을 보고 싶다고. 


커피 한잔 값. 누군가에게도 정말 큰 의미이지만, 나에게도 정말 큰 의미입니다. 


글은 마음을 비추는 창이 맞나 봅니다. 요새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그런지 자꾸 날 선 글이 나오고, 인색한 내 모습이 투영되고 그러네요. 조만간 마음의 상태를 올려서 밝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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