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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노 Jul 23. 2022

엄마 친구한테 보험 들지 마세요.

호구가 될 것인가. 나쁜 년이 될 것인가.

오빠가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집에 와보니 처음 보는 엄마 친구분이 와 계셨다. 두툼한 파일철을 가지고. 남편분께서 생각보다 일찍 회사를 그만두게 되셨고, 뒤늦게 생업전선에 뛰어들어보니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더란다. 엄마는 이미 한두 개 가입하신 듯했고, 다음 타깃은 오빠였다. 


오빠는 당시 중견기업에 다녔다. 실수령액은 정확히는 몰라도 300을 넘기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 후반의 남성. 태어나서 지금까지 크게 아파본 적 없는 건장한 남자. (그 이후로도 계속 건강해서, 40이 넘은 지금까지도 링거 한 번을 꽂아본 적이 없다) 그런 오빠에게 엄마 친구분은 월 납입료가 30만 원이 넘는 상품을 권유했다. 


그날 엄마와 오빠는 싸웠다. 


"어차피 보험은 필요한 건데, 겸사겸사 가입해 주면 좋잖아. 설마 엄마 친구인데 너한테 안 좋은 거 권했으려고?" "월 납입 30만 원을 20년 넘게 하라고? 지금 월급을 그렇게 쓰는 사람 내 주변에 아무도 없어!"


나는 원래 오빠 편을 잘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빠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엄마 친구분은 보험설계사로 본인이 받아갈 인센티브가 중요한 거다. 우리 오빠에게 필요한 보장이 무엇인지, 우리 오빠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는 고민해 보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권한 상품을 보면.) 그리고 어쩌면 우리 오빠에게 필요한 보험을 딱 맞게 설계해줄 만한 실력 자체가 없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후 내가 취업했을 때도, 엄마의 다른 친구분이 보험을 권했다. 나는 들지 않았다. 호구가 되기보다는 나쁜 년이 되자, 싶었다. 하지만 나도 보험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으나(지금 생각해보면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알 수 없다. 보험사의 마케팅은 신비롭다) 아는 계리사, 설계사가 없었기에, 엄마가 최근에 알게 되었다는 보험설계사를 소개받아, 결국 보험을 들었다. 


그렇게 꼬박꼬박 매월 보험료를 납입하며 몇 년이 흘렀다. 육아휴직 중 돈이 너무 궁하여(?) 이런저런 재테크 공부를 하다가, 보험 리모델링 유튜브를 만나게 되었다. 안 그래도 보험료가 좀 너무 나간다 싶었던 터라, 메모까지 하면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컨설팅까지 25만 원을 내고! 받아보았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절대로 들어서는 안 된다는 보험 두 개를 내가 이미 들고 있었다(혹시 가지고 계시면 알아보고 정리하세요...). 


(1) CI 보험 (critical illness 보험인데, 약관 진짜 꼼꼼히 읽어보면 가입하지 않게 됩니다. 대략 사전 두께라, 안 읽어보고 가입하는 사람이 99.9% 일거라 생각함. 설계사에게 가장 많은 인센티브가 간다고 함.) 


(2) 변액연금보험: 그냥 연금저축펀드나 IRP를 잘 들어야 됨. 이거 사업비만 많이 나오고, 불필요한 보장이 붙어있음. 이것도 설계사가 받아가는 돈이 많아서 많이들 파신다고. 후후.) 


해약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그분께 전화를 했다. 가족들이 다 얽혀 있어서, 계약해지하겠다는 전화를 거는 것이 마음 편하지는 않았지만, 호구가 되기보다는 나쁜 년이 되는 게 나으니까. 앞으로 몇십 만원씩 십 년 넘게 갖다 버릴 수는 없으니까. 그녀는 마지막까지 나를 만류했다. "프로그램 좋은 건데, 라노 님이 잘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라고. 나는 이미 결심했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관계가 아예 끊어지면 좋았을 텐데, 가끔 친정에 들를 때면 과일상자를 사들고 방문한 그녀를 불편하게 마주칠 때가 어쩌다 가끔 있었다. 나도 좀 아쉽고 불편하다. 정말 나에게 필요한 보험(정기보험, 암/심/뇌, 가족력에 의한 특약 정도)만 우선 들으라고 권유했다면, 나도 관계도 잘 유지하고, 좋은 비즈니스 파트너로 다른 사람에게도 소개해 줄 수 있었을 텐데. 뭐, 잘 모르고 상품에 가입한 내가 제일 잘못한 것이기는 하다. 다음 생이 있다면 보험은 엄마 친구에게 들지는 말아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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