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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노 Jul 04. 2022

새로 뭔가를 해본다는 건 왜 그토록 어려울까?

생각해보면, 별로 잃을 것도 없는데 말이지요. 

10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회사에 다니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많은(이라고 쓰고 대부분이라고 읽는다) 사람들이 지금 다니는 회사에 불만이 많다. 그리고 그들은 불평을 많이 하면서도, 실제로 바로 이직을 시도하지 않는다. 더럽고, 치사한 일을 겪거나, 어떤 계기가 있어야 이직을 결심한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내가 다녔던 회사 중 한 곳은 '자진 급여 삭감 신청서'라는 것을 제출받았다. ("회사 사정이 어려우니, 저라도 나서서 회사의 비용을 줄여드리고 싶어요. 제 월급을 깎아주세요"라는 내용의 신청서였다! '이걸 변호사에게 받는다고?' 속으로 경악했는데, 선배 변호사들 중 이미 서명해서 낸 사람도 있었다. 난 안 내고 찍히는 걸 선택했다.) 심지어 사옥 화장실의 휴지를 빼기도 했는데, 그러면 직원들이 화장실을 자주 가지 않거나, 집에서 두루마리 휴지 등을 가져올 것이므로 고정비용 삭감효과가 있다는 보고를 받고 경영진이 '휴지 빼기'를 결정했다는 괴소문이 돌았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직을 시도하지 않고 버텼다. 나도 '정말 더럽고 치사해지기 전까진' 버텼다. 아니 대체 왜들 그러는 걸까. 난 왜 그랬던 걸까?


"그렇게 회사가 짜증 나면, 이직을 하면 되잖아?"

"이직이 어디 쉬운가 뭐. 다른 회사라고 나으리란 보장 있나 뭐."

"이력서나 내봐. 떨어져 봐야 그만 아냐? 잃을 게 없잖아."

"여기 그래도 좋은 점도 있어. 사수도 좋은 분이고."

"사수도 좋고, 일도 재밌고, 직원들을 더 위해주는 회사가 있을 수도 있지. 그건 이력서를 내보고, 면접 보러 가봐야 알 수 있는 거잖아!"

"그렇긴 한데.." (+지금 다니는 회사에 대한 불평의 무한 루트)


회사에 대한 불만이 많은데도, 이직을 결심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느끼는 것이 있다. 무언가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있다는 것. 리스크 제로에 가까운 행위일지라도, 그것에 나아가는 데까지 엄청난 심리적 저항감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봉 동결, (원하지 않는 곳으로의) 발령, 파격인사(후배가 내 팀장) 등의 참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회사를 위한 변명, 움직이지 않는 자신을 위한 변명을 하며 참아내려고 한다.



[지금의 조건에서 시작하는 힘] 책을 보다가, 내가 왜 이직을 바로 결심하지 못했는지, 그 답을 찾았다. '무위험에 가까운 행동'을 시작할 수 없는 이유,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 행동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그 실패가 갖는 상징성이다! 내가 자격이 없어서, 내가 시장에서 먹히지 않아서, 내 스펙에 부족한 점이 있어서, 그런 생각을 스스로 하게 될까 봐 두렵다. 



연봉 인상이나 데이트 신청은 실패해도 그에 따른 피해는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 (..) 그럼에도 우리가 이런 무위험에 가까운 행동을 두려워하는 것은 실패의 두 번째 요소인 의미와 상징성 때문이다. 왜 거절당했을까. 내가 자격이 없어서, 내 커리어가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인 것 같아. 그런 생각이 들기 쉽다. 무위험이었던 행동이 우리의 자신감과 자긍심에 예고도 없이 녹아웃 펀치를 날린 것이다.

<지금의 조건에서 시작하는 힘> 스티븐 기즈, 43면 



생각해보면 (1) 범죄가 아니고, (2)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고, (3) 비도덕적 행위가 아니라면, 어떤 행위가 그 자체로 나에게 굉장히 위험하지는 않다. 글을 쓰고 싶다면 글을 쓰고, 수영을 배우고 싶다면 수영을 하면 된다. 마음속의 심리적 저항감을 따라가 보면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그 뒤에는 "사실 자긍심에 스크래치 나고 싶지 않다"는 조금은 찌질하고 시시한 생각이 들어있다는 결론에 봉착하게 되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가 부덤스러운 이유는 라이크 없고, 리플 없고, 구독자가 줄어드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누군가 내 글을 보면서 속으로 '상품성 없군.' '셀링포인트가 없군.' '독자 분석이 안 되어 있군.' '이런 동글을 브런치에 쓴다고? 일기장에나 써야 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럴 때마다 한 번씩 더 생각하려고 한다. 뭐, 이거 해서 안 돼도, 자존심에 스크래치 밖에 더 나겠어? 상대방이 내 글을 읽고 만족스럽지 않다면, '별로야'라는 말 밖에 더하겠어? (구독취소를 할 수도 있음에 주의하자) 그런 작은 이유들로 내가 도전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스스로 포기해 버리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글은 잘 써지지 않는 오늘이지만, 용감하게 발행 버튼을 눌러본다. 


All they can do is saying no. 싫다는 말 밖에 하겠어?

오늘도 내일도, 되뇌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손을 뻗어봐야겠다. 헤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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