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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노 Jan 10. 2018

워킹맘과 죄책감

잘 못한 건 없지만, 나에겐 무리할 정도로 최선이었지만.. 그래도..

시무식에서 포상을 받던 그녀는 왜..


1월에 복직을 하였더니, 복직하자마자 시무식 행사가 있어서 팀원들과 함께 참석했다. 회사 각 부서 사람들이 연말에 어떻게 행사를 진행했는지에 대한 영상자료를 보고, 내가 자리를 비운 몇 개월을 포함한 지난 1년간 회사에서 이룩한 성과에 대한 공유, 피드백이 이어졌다. 그리고 승진 소감 발표 및 공로자 포상이 있었다. 그 대상자 중 유독 앳된 얼굴의 여자 차장님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회사에서 차장 다는 거 정말 어려운데, 대단하네. 게다가 어려 보여!'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가 이끄는 팀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해당 브랜드 매출 업계 1위). 물론 그녀가 좋은 리더라는 이유 만으로 그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니겠으나, 그녀가 좋은 리더이자 훌륭한 일꾼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소감 발표 시간이 되자 차분하게 강단에 오른 그녀는 "오늘의 이 순간이 있기까지 힘써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팀원들, 그리고 매장에서, 공장에서, 또 빛나지 않는 곳에서 힘써 주신 모든 분들의 공로가 없었다면 이룰 수 없는 성과였습니다." 차근차근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말이 중간에서 조금씩 끊어졌다. "물론 힘든 순간도 있었습니다. 제게는 태어나서부터 단 한 번도 통잠을 자지 않은.. 18개월 된 사랑스러운 아이가 있습니..다." 목소리가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매출관리, 매장관리, 마케팅 전략 수립, 경영진 보고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 그녀는 울지 않으려고 고개를 살짝 들었다. "저만 기다리고 있었던 저의 1순위 고객, 아이와의 시간이... 새벽에 두 번씩 깨서 아이를 달래주고 출근할 때.." 뒷부분은 또렷하게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들리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에게 가해졌던 체력적, 정신적 압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쁜 아이가 주는 얼마간의 위로와, 그 예쁜 아이를 기다리게 했다는 죄책감과, 그 죄책감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그녀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대안이라는 자기 위안과, 그 최선을 다하기 위해 자신을 밀어붙여 왔던 힘겨움이, 나는 제대로 겪어보지 않았음에도 그냥 전달되어 왔다. (이영도 작가의 <눈물의 마시는 새>에서 나가 종족이 사용하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는 소통수단인 '니름'으로 들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손해, 그런 문제인 걸까?


복직하고 2주 차, 시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안심하고 회사로 출근하고 있다. 우리 시부모님은 내 기준에 정말 우주 제일이시다. 아버님은 이유식을 끝장나게 만드시는 마스터 셰프이시고, 어머님은 손자에게 책을 잘 읽어주시겠다며 구연동화를 배우셨다. 평소 집안을 깔끔하게 정돈해주시고, 알뜰하게 살림 챙겨주시며 심지어 내 아침과 회사에서 먹을 간식도 챙겨주신다. 이렇게 사랑이 넘치시는, 아이에게 최고의 환경을 제공해 주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시부모님 두 분이 아이 옆에서 봐주시는데도 나는 이상하게 죄책감이 든다. 그래도 엄마가 함께 있어줘야 하지 않나? 야근, 예전만큼 해서는 안될 것 같은데 어쩌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면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아기도 정말 예뻐하고, 평소 집안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도움이 아니다!!)하는 신랑은 회사에 있을 때에는 시부모님이 보내는 카톡에 재깍 대답하지 않는다.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다, 집에 가서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현명한 처사지만, 그래도 되지만, 이상하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의식적으로라도, 죄송해하지 않겠습니다. 


애기가 울기라도 하면 영상통화라도 해야 해, 혹은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생겼을지도 몰라, 애기 용품 중 뭔가 떨어졌으면 어떡하지? 분유랑 기저귀는 채워놓은 거 보고 나왔는데. 이런 생각에서 마냥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 또 회사에 미안하다. 그러니까, 이러나저러나 죄책감에서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아기에게도 미안하고, 회사에도 미안하고, 그리고 오랜 시간 아이를 봐주시는 시부모님께도 죄송하고. 그냥 다 죄송하다. 하지만 죄송해하지 말아야지. 잘 못한 건 없지만 그래도 죄책감이 든다면, 죄책감이 옳은 감정은 아닐 것이다. 죄가 없는데 난. 잘못이 없는데, 난! 어려운 여건 가운데 시부모님과 잘 지내면서 울지 않는 아가에게 고맙고, 사랑을 쏟아 아이 봐주시고 나와 신랑을 챙겨주시는 시부모님께 감사하고, 가끔 아이 생각을 해도 내 일 차질 없이 잘 해내면 칭찬해 주는 회사에 감사해야지. 


죄책감, 저리 가. 여기는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그리고 차장님, 잉잉. 꼬옥. 알지만, 울지 마세요! 너무너무 잘해오셨는걸요.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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