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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노 Jun 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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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요리사, 할아버지 사우르스 


시부모님께서 아이를 봐주신다고 처음 말씀해 주셨을 때 내 마음은 감사함 반, 두려움 반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시부모님과 관계가 좋았는데, 가깝게 살게 된다면, 내 일상의 민낯을 모두 보여준다면, 육아방침이 다르다면 어긋나 버리는 것은 아닐까? 날 아껴주는 소중한 사람들은 차라리 시터이모님의 도움을 받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아이는 이제 13개월, 부모님이 봐주신지는 5개월 차. 나는 요새 그냥 내가 운이 좋다, 시부모님께 감사하다는 생각 밖에 하지 않는다. 깔끔하게 집안을 정돈하면서도 잔소리 한 번 안하시는 시어머니, 그리고 사랑과 요리실력이 넘치시는 시아버지(자칭, 타칭, 가시고기 시아버님 ㅠ) 아버님께서 아이가 알러지 없이 먹을 수 있는 식재료를 리스트업하고, 식단표를 짜두셨다. 때론 찌거나, 데치거나, 삶아서 밥과 같이 주신다. 매일 이유식 책을 들여다보시며, 지금 월령에서 먹을 수 있는 식재료가 무엇인지, 어떤 요리방법까지 가능한지 공부하시고, 아이가 질리지 않게 로테이션을 돌리신다. 


(유투브로 아버님의 이유식/놀이법 영상을 찍을까 고민 중이다. 너무 잘하셔서. 근데 그럼 영상에 언뜻언뜻 

 나올 무개념 며느리로 욕을 바가지로 먹을 것 같아서 보류 중이다 -_-)  

13개월 돌지난 아이 일주일 식단표 18년 6월 3주차


요새 너무 자주 들어서 cliche 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한 아이를 기르는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걸 체험 중이다. 매우 예민하게 주변의 모든 것을 흡수하고 빨아들이는 시기. 많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통해 아이에게 사랑을 전해준다. 


아이를 낳기 전, 나는 매일 고민했다. 살림력 제로, 내 안의 너무 많고 짙고 다양한 욕망들(출산, 육아에도 불구하고 사그러들질 않는다), 아이를 위한 시간 안배의 어려움, 귀차니즘, 게으름의 온갖 '좋은 엄마 부적격 사유'를 갖춘 내가 엄마가 되어도 좋은지에 대해서.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더 나은 인간이 되려 해야하고, 더 배워야 한다. 다만, 나는 아이가 자라는 마을의 일부이지 전체가 아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아도, 마을 속에서 같이 자라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참 운이 좋았다. 하나님께, 그리고 가족들께 정말 감사하다.


feat. 핑크퐁 <공룡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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