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제자리서 빙글빙글

치매 걸린 강아지와 함께, 4주차

by 휴지

챡챡챡챡챡챡, 챡챡, 챡, 챡챡챡챡, 챡챡챡.


매트리스에 누워 스마트폰을 두들기는 낮. 모처럼 낮잠을 잔 오늘을 축하하듯 뭉툭한 발톱소리가 제멋대로 터진다.

아침 모닝콜을 대신하여 나를 깨웠던 소리는 몇십 분이 지나도 꺼지지 않고 스스로 울리고 있었다.


챡챡챡, 챡챡챡챡챡, 챡챡챡챡, 챡챡.


지치지도 않는 걸까.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저렇게 돌아다닐 수 있는 체력이 놀랍기만 하다. 산책을 나갔을 때는 10분도 채 안 돌아다니곤 나에게 안아달라 징징대더니 집 안에서는 슈퍼 파워라도 생기나보다.


내가 쟤 같은 능력이 있었으면 하버드를 갔을 거야.


저런 체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면 굳이 대학에 안 가더라도 뭐든 했겠다. 적어도 다이어트 할 일은 없었을듯. 삐걱대는 매트리스에 눌리는 뱃살을 만지작거리면서 편하게 허튼 생각을 즐긴다.


아마 30분은 지났을까.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비슷비슷한 내용을 담은 영상을 보는 것도 슬슬 지겨워진 참이었다. 앉은뱅이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텀블러를 들고 부엌으로 이동한다. 부엌이라기엔, 음, 거실과 일체된 것과 다름이 없지만 말이다.


이제 커피나 한 잔 마시고 또 하루를 시작해 보실까. 시판 저지방 우유와 1000원짜리 커피 필터로 내린 에스프레소를 섞은 후 시판 얼음을 흘러 넘칠 때까지 넣었다. 몰랐는데 스스로 목이 꽤 마른 상태였나 보다. 높아지는 커피 수위를 지켜 보는데 목이 마르는 것 같았다.


벌컥벌컥 급하게 들이키고 아직까지 울리고 있는 챡챡챡챡 소리를 향해 몸을 돌렸다. 같은 자리만 빙글빙글 돌고 있는 우리 노견을 예고 없이 확 들어올리자 '으르렁' 하면서 공격 태세를 취하던 것도 잠깐, 곧 얌전해진다.


거실 어딘가에 있는 삼각 쿠션에 풀썩 주저 앉는다. 텀블러는 바닥에 대충 내려두고 몸 위에 노견을 가로로 놓는다. 여기가 어딘지 몰라서 어정쩡한 자세로 버티는 걸 억지로 몸통을 끌어 내린다. 저도 모르게 편한 자세를 취하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귀여워서 이마에 뽀뽀를 하자 건드리지 말라며 고개를 훽 돌려 버린다.


너 정말 싸가지도 없고 너~무 귀엽다.


열심히 얼굴을 돌리면서 내 손길을 피하는 걸 억지로 따라 붙어서 짧게 쓰다듬곤 다시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카카오톡에 들어가 방학을 즐기고 있는 친구들에게 심심하다며 말을 던진다. 언제 숫자가 줄어들까, 이모티콘을 남발하면서 시간을 가늠한다.


내 배 위에 걸터 앉아 눈을 꿈뻑거리고 있는 우리 노견. 걔 뺨을 간질인다.


오늘도 우리 노견과 함께 햇살이 짱짱하게 들어오는 원룸에서 시간을 죽인다.


보스 몬스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움직이다가 멈춰서 지이이잉 한 구역을 스캔하고 또 움직여서 다른 구역을 스캔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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