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추위와 더위, 그리고 산책

치매 걸린 강아지와 함께, 3주차

by 휴지

오늘도 집 밖을 나선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그렇게 나가서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온다. 예전 같았으면 내 손에는 목줄이 들려있었겠지만 지금은 혼자다.


우리 노견과 산책을 못한 지도 꽤 오래됐다. 쓰레기를 버릴 때나 잠깐 날씨를 확인할 때 노견을 외투로 꽁꽁 싸매도 금새 벌벌벌 떤다. 그 바람에 같이 걷는 산책은 늦가을에 포기했다.

우리 노견은 나이가 들면서 더위도 추위도 잘 타게 되었다. 반대로 더위도 추위도 그닥 느끼지 못하는 나는 언제나 노견을 위해 선풍기와 에어컨을 켜고, 전기 장판과 난방을 켠다.

적당한 온도에서 푸지게 자는 모습을 보면 너무 귀여워서 뭐든지 해주고 싶어진다.


치매를 지연시키려면 새로운 자극을 넣어주는 게 좋다던데.


혼자 길을 걷다가 문득 인터넷에서 봤던 정보가 떠오른다. 사람이 치매 예방을 위해 그림 맞추기나 다양한 활동을 하듯이 개한테도 꾸준히 자극을 주는 게 중요하단다.


흠, 우리 노견한테는 후각만한 게 없지.


산책도 좋아하고 바깥 공기도 좋아한다. 게다가 먹을 거라면 눈이 돌아가서 환장을 한다. 후각 자극을 주는 건 정말 누워서 떡, 아니 죽 먹기 수준이다.

하지만 플러스가 있으면 마이너스가 있는 법. 우리 노견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시청각 자극에는 꿈쩍하지 않는 재주가 생겼다. 좋아했던 장난감을 코 앞에서 흔들어도 눈만 꿈뻑이고 강아지용 ASMR 영상을 틀어도 귀 한 번 움찔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삑삑대는 장난감을 못가지고 놀아서 성화였는데 이제는 아주 일관된 태도로 거절한다.

결국 백기를 든 내가 머리털이 눌릴 때까지 쓰다듬기만 하다 보면 어느새 잠에 들어있곤 한다.

자주는 아니어도 어떻게든 후각 자극을 주기 위해 봄~가을에는 주기적으로 산책을 나가고자 노력했다. 우리 노견은 체력도 썩 좋진 않은지라 길게 다니진 못한다는 게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었다.

짧게 자주 다니는 게 어쩌면 더 좋을지도 몰라.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는데 이제는 날이 추워서 아예 나가지를 못한다. 노견 입장에서는 내가 잘 다니던 산책을 뜬금없이 뚝 끊어버린 셈이 아닌가. 스트레스 여파로 치매가 심해질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잘 지내고 있다.

심지어 요즘에는 사고도 덜 치고 이름을 부르면 고개라도 움찔하는 게 다행히도 상태가 나빠 보이지 않는다. 아니면 예쁜 짓만 골라하고 있거나. 나에게는 그게 그거긴 하다.


3월이다. 계절이 지나가고 계절이 시작한다. 나는 언제나처럼 또 이유 없이 밖으로 나갈 테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땅이 녹으면 우리 노견이 내 옆에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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