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보호자가 분리불안증이면 어떡하나요

치매 걸린 강아지와 함께, 2주차

by 휴지

회사에 가야 해서, 장을 봐야 해서, 운동을 해야 해서, 놀러 가야 해서, 오늘 나는 학교에 가야해서.

다양한 사람이 각자 핑계를 대며 집구석을 벗어나 버스나 지하철을 탄다. 어디 인터넷에서 본 얘기인데 우연히 남은 빈 좌석에 털썩 주저 앉아 한 숨 돌리고 나면 대체로 이런 생각이 떠오른단다.


첫 번째, 가스 불 껐나? 두 번째, 난방(혹은 에어컨) 껐나? 세 번째, 현관문 제대로 잠갔나?


어쩐지 나도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창 밖을 멍하니 보던 게 거짓말처럼 정신이 또렷해지면서 어깨에 힘이 들어 간다.


화재라도 나면 어떡하지? 전기세 폭탄 나오는 거 아냐? 도둑이라도 드는 거 아냐?


쓸데없는 걱정이 나를 삼킨다. 애써 고개를 저으면서 찬찬히 내 행동을 되짚어 본다. 오늘 아침엔 불 안 썼고 난방도 낮은 온도로 설정해 놨고 문 잠기는 소리도 똑똑히 들었어.


끝끝내 '그럴 일은 없다'고 자신을 안심시키고 나면 몸에 힘이 풀려 의자에 푹 기댄다. 보통 사람들은 여기서 망상은 끝내겠지만 나는 좀 특별하다. 흘러가는 바깥 풍경을 보다보면 2차로 이런 생각이 저절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네 번째, 아지가 나를 따라서 복도까지 나왔는데 모르고 문을 닫진 않았겠지? 다섯 번째, 아지가 발작이라도 일으키는 거 아니겠지? 여섯 번째, 상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져서 지가 다치는 건 아니겠지?


치매가 시작된 이후로 몇년째 그렇다. 항상 그럴 일 없다며 스스로를 다독여도 찜찜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낮에는 자느라 바빠서 밖에 나올 처지가 안 되고, 발작은 일으킨 적이 없고, 상상치도 못한 일이라... 글쎄, 화재가 일어나거나 지진이 터지는 등 특수한 재난 상황이 아니고서야 특별한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알고 있지만 영 막을 수가 없다. 강의실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는 원래 별의 별 잡생각이 다 들기 마련이지만, 이따위 생각은 불길해서라도 치워버리는 게 낫다. 눈에 보이는 자연 풍경과 귀에서 들리는 노랫소리에 집중해 본다. 이왕이면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외투의 버석거림에도. 코를 스치는 버스 먼지내에도.

잡생각을 치우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아무래도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찝찝하다.


얼른 집에 가서 아지 보고 싶다.

그러면 나도 평화로워질 수 있겠지.


하루의 절반 이상을 자는 데 쓰지만 내가 외출했다 돌아오면 귀신 같이 깨서 꼬리를 흔들곤 했다. 아마 찬바람이 들어오는 걸로 눈치를 채는 모양인데 가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눈도 백내장 때문에 뿌옇고 귀도 잘 안 들리는 탓에 목청을 높여 이름을 불러야 알까 말까 하는데 촉감과 후각만큼은 아직 어릴 때만큼 날카로운가 보다.


시간을 확인하려 켠 스마트폰. 바탕화면은 자기 침대에 누워 푹 자고 있는 아지 사진.


귀여워.


시간을 확인하려던 본래 목적은 상실한 채 만족스런 기분으로 스마트폰을 끈다.


빨리 보고 싶다. 새빨간 학생 가방을 끌어 안고 이번엔 고개를 약간 올려 하늘을 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01. 당신이 보게 될 아침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