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잠버릇

치매 걸린 강아지와 함께, 6주차

by 휴지

우리 노견은 어릴 때부터 잠버릇이 심한 편이었다.


잠을 자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가끔씩 '힝!' 하며 높은 소리를 내곤 했다.

어렸던 나는 그게 잠꼬대를 걸 모랐기 때문에 깜짝 놀라서 달려 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왜 그래, 괜찮아?"


아마 많은 개들이 그러겠지만, 우리 노견은 몸이 아파도 티를 내는 법이 없었다.

실수로 발이나 밟이면 힝! 하고 울 뿐.

많이 아플 때, 병원에 가야 할 만큼 아플 때는 언질 한 번 준 적이 없다.

어린 나이에 생각하길 잠결에 '나 아파요'라는 신호를 주는 로만 알았다.

어린 내가 우리 노견 -그때는 걔도 10살도 안 됐지만-을 흔들흔들 다급히 깨우면 노견은 눈을 번쩍 뜨고 고개를 빠딱 세웠다.

마치 집에 불이 났다는 얘길 들은 사람마냥 벌떡 일어났다.


'뭐야, 무슨 일 있어?'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와중에 눈꼽은 덕지덕지 붙어있지, 억지로 깨서 눈은 반도 못 떴지, 턱은 벌어져서 빠알간 혀가 대롱대롱.

동그란 눈만 껌뻑이는 모습에 대고 참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아픈 줄 알았는데 그냥 잠꼬대였나 봐.


날아간 얼탱이를 붙잡을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내려만 보고 있자면 우리 노견은 여유로우시게도 입맛을 쩝쩝 다셨다.

우리 노견이 별 일 없다고 생각한 건지 꿈을 꾸다가 놀라서 깬 거라고 생각한 건지 나로써는 알 길이 없지만, 아무튼 다시 덮쳐오는 피로에 순응하듯 우리 노견은 고개를 바닥에 툭 내려놓고 시 잠을 청했다.

퐁실퐁실 풍기는 강아지 꼬순내가 내 코를 자극할 때에 우리 노견은 입을 다시 쩍 벌렸다.

오해로 빚어진 상황에 하품이란 조미료를 더한 것이다.


웃긴 건 우리 노견이 잠꼬대만 하는 게 아니란 점이다.

어떤 날은 몸 근육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막 팔다리를 휘적였다.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는 것 같기도 하고 허공에 떠 있는 간식을 향해 휘적이는 것 같기도 했다.

심할 때는 고개까지 들썩들썩이는 통에 꼭 발작이라도 일으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 어린 나는 또 놀라서 노견을 급하게 깨우곤 했다.


"왜 그래, 괜찮아? 병원 갈까?"


보통 이러면 금새 깬다.

하지만 드물게 그러지 않은 때가 있는데 그러면 난 패닉에 빠지곤 했다.

평소엔 이마에 손만 닿아도 벌떡 일어난다.

가끔 얼마나 몸을 흔들던 일어나지를 않는다.


아마 아주 깊은 잠에 빠져있는 거겠지.

얌전히 자기만 할 때는 나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푹 자는 동안은 마음껏 쓰다듬고 마음껏 냄새를 맡아도 우리 노견이 화를 내지 않았기에 나에겐 오히려 재밌는 시간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우리 노견의 나이가 10대 중반을 넘어가고 나서는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혹시 자던 중에 강아지 별로 떠난 걸까 봐 무서움이 앞섰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진 와중에 팔다리를 벌떡이는 애가 깨워도 일어나질 않으니 내 마음이 얼마나 놀랐겠는가.

결국 내가 억지로 노견 몸을 들어 올리고 나서야 우리 노견이 허둥지둥 잠에서 다.

나는 그제서야 속을 쓸어내렸다.


'뭐야, 무슨 일이야!'


노견이 머리를 두리번 두리번 세차게 돌려댔다.


아, 그냥 이 깊었던 거구나.


하얘진 머리에 피가 돌아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 대 약하게 쥐어박으니 우리 노견이 자는데 왜 우냐며 승질, 승질, 온갖 승질을 다 부렸다.

지금 누구한테 이빨을 보이냐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멱살처럼 잡고 싶은 마음이 훅 끼쳐도 나에게는 숙이고 들어가는 것 외에 다른 수는 없었다.

한숨만 푹 쉬면서 머리를 헝크러뜨리면 그것도 싫다고 고개를 팩! 돌려버렸다.

그리고는 또 잠을 지.



뭐, 한낱 인간이 반려견의 잠버릇을 어떻게 하겠는가.

결국 우리 노견이 20살에 가까워질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저 덜 당황하면서 '우리 노견이 재밌는 꿈을 꾸는 모양이다'라며 궁둥이나 한 번씩 두들겨 줄 뿐.

심지어는 나이가 드니까 잠도 얕게 자고 문 틈새로 부는 바람에도 깰 정도로 너무 예민해지는지라.

예전처럼 깊은 잠에 든, 드문 기회를 포착했다 하면 동글동글동글, 손 안에서 노견 몸을 굴리기 바쁘다.


비단 같이 고운 털에 눈꼽 섞인 검은 눈, 습식 사료를 먹은 흔적이 남은 입가 털.

주물주물! 따뜻한 물이 한가득 담긴 물주머니 마냥 손에 잡히는 거죽을 늘리면서 오늘도 꼬순내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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