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린 강아지와 함께, 9주차
브런치에서 막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포부가 굉장히 컸다.
치매 초기 증상이 무엇이 있는지, 보호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짜증이 나는 일인지 등.
치매에 걸린 강아지를 나 혼자 간호하면서 느낀 수많은 것을 풀어 놓고,
그저 쓸쓸하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아이에게 좋은 친구가 될 것 같다는 느낌만으로
반려동물을 들이는 것을 재고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내가 멍청해서 그러는지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쓸 게 없다.
남을 설득할 만한 소재가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치매 걸린 반려견을 뒤치닥꺼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학생 신분으로도 재택 근무를 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 노견을 간호를 할 수 있는 것이지, 직장인이라면 매우 어려울 것이다.
하루 종일 반려견과 함께 붙어있어야만 제대로 된 케어가 될까 말까 하니까.
- 매번 말했던 것처럼 우리 노견은 대소변을 아무데나 싸고
심지어는 밟고 돌아다니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 똥 바닥이 나를 반겨준 적도 여러 번이다. 그래도 당신은 짜증을 내면 안 된다.
- 잠은 낮에 자고 새벽에 일어나는가 하면 챡챡 발소리를 시끄럽게도 내면서 몇 시간 동안 돌아다닌다.
그것 때문에 새벽에 깨도 당신은 화를 내면 안 된다.
- 이름을 불러도 나에게 오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하다 못해 고개조차 찔끔 움직이지 않는다.
'손, 발, 엎드려'는 기본이고 '기다려'까지 해내는 아주 훌륭한 모범견이었던
우리 노견은 자기 마음에 안 든다하면 바로 짖고 먹을 거만 보면 눈이 돌아가 달려드는,
그야말로 개 그 자체가 됐다.
당신 밥을 빼앗아 먹으려고 달려들어도 당신은 손찌검을 하는 시늉이라도 안 된다.
내가 '반려동물에게 화를 내지 말 것'을 신신당부하는 이유는 도덕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괜한 일에 열 내지 말 것을 권유하는 것이다.
일반 가정에서 무리없이 키울 만한 중소형 반려견에 한정된 이야기긴 하지만,
얘들은 죄책감이랄 것도 참을성이란 것도 지능이랄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련이 가능한 이유는 당근과 채찍을 구분할 본능과 보호자를 향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처럼 인과관계를 유추할 지성이나 이성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는 걸 꼭 알아주었으면 한다.
반려동물도 결국 동물이다.
동물은 본능에 따라 움직이며, 따라서 인간인 당신이 화를 내봐야 자기 귀에만 들리고
분노는 온전히 스스로가 감당해야 할 감정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힘든 일 많은 세상인데 쓸데없는 일로 힘 빼지 말라는 것이다.
운전 매너가 좋지 않은 사람에게 성을 내 봐야 그 사람은 갈 길 잘만 가고
욕설은 나만 듣는다는 얘기가 있지 않은가.
반려동물에게 화 내는 것이 딱 그 짝이다.
머리로는 알고는 있어도 스트레스가 쌓이는 걸 막을 길은 없다.
그게 간병이라는 거다.
그나마 크기가 크지 않아서 힘으로라도 제압할 수 있어서 망정이지
대형견이었다면 어땠을지 눈 앞이 아찔하다.
우리 노견을 사랑하는 것과 간병하느라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별개인지라
브런치에 원망을 가득 담은 글을 난사해서 나의 정신적 안정을 도모하고
감히 가벼운 마음으로는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생활에 발도 못 들이게 하고 싶었다.
그런 악한 의도를 가지고 기억을 더듬어 더듬어 가니 우리 노견은 언제나 사랑스럽더라.
반려동물의 본능 어쩌구하면서 잘난 듯이 얘기했지만 결국 나도 사람이라서
우리 노견이 같은 실수를 해도 허허 넘기는 날이 있는가 하면 열 받아서 한 대 치고 싶을 때도 있고
실제로 딱밤을 먹인 적도 있었다.
그런데도 지금 돌아 보니까 모든 날이 행복했다.
거진 매일 똥 바닥을 치우고 더러워진 발을 씻기고 담요를 세탁기에 넣고
개와 진심을 다해 싸우면서 약과 영양제를 먹이는데도 어째선지 쓸 내용이 없는 까닭일 것이다.
우리 노견은 똥 냄새로 나를 깨웠지만 냅다 끌어 안아도 으르릉거리지 않았다.
우리 노견은 아무데나 볼 일을 보지만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꿈뻑꿈뻑 긴장을 풀었다.
우리 노견은 약 먹기 싫다고 내 손가락을 물었지만 내 품에 얌전히 안겨서 잠을 잤다.
나는 그걸로 충분한 행복을 얻었다.
아무리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저 세 가지만 있다면
영원히 우리 노견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손을 뻗어 장난치면 우리 노견도 장난으로 앙 물고, 먹던 걸 나눠 주면 더 달라고 발짓 하고,
자던 애를 번쩍 들어올려 내 옆구리에 끼워도 반항없이 그대로 다시 잠에 드는
그런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면 평생을 우리 노견 뒤치닥꺼리만 하고 싶다.
아마 우리가 사후세계에서 만났을 때에도 나는 기꺼이 수발을 들겠다며 자처할 테지.
그만큼 우리 노견과 함께하는 생활이 행복하다.
영원하지 않기에 소중함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데
자신에게 너무 소중한 것이면 영원해도 자연스레 깨달을 것이다.
그 존재가 나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귀한지.
끝 없는 시간이 있다고 해서 다른 가치도 끝 없는 것은 아니다.
내 가치와 재력과 미래와 운과 바꿔서라도 평생을 함께 지내는 꿈을 꾸는데
시간 따위의 것이 무작정 길기만 하다고 마음을 다 가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