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

치매 걸린 강아지와 함께, 10주차

by 휴지

요즘 가볍지만 무거운 고민이 하나 생겼다.


바닥에 배변 패드를 깔까 말까?


"저새끼-그때 화가 좀 나 있었다- 봐주다가 이중인격이 될 것 같다"고

친구에게 하소연을 했는데 '배변 패드 싼 거 사서 바닥에 깔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 줬다.


굉장히 솔깃하고 괜찮은 제안이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몇 가지 문제가 있었고 지금까지 고민을 계속 하고 있다.


첫째.

아무리 큰 배변 패드를 사더라도 전체에 빈틈없이 깔기엔 무리가 있다.

원룸이 아무리 좁아 터졌더라도 방은 아니지 않은가.

도대체 몇 장을 써야 할 지 가늠조차 되지를 않는다.


둘째.

아무리 저렴한 배변 패드를 사더라도 매일 갈아치우기에는 무리가 있다.

줄이고 줄여서 5장 이내로 쓴다고 치자.

일주일만 지나도 35장을 쓰는 셈이다.

한 달이 지나면 약 120장을 쓰는 셈이고.

아마 운이 좋다면 주에 20장, 달에 80장을 쓰겠지.

여전히 적은 양은 아니다.


셋째.

배변 패드를 구입하는 비용도 비용이고, 불어나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도 쉽지만은 않을 거다.

사실 쓰레기를 버리는 거야 외출할 때 갖다 버리면 되는 거니까 크게 어렵진 않을 텐데

진짜 문제는 비용이다.

강아지를 케어하는 데 필요한 돈은 오로지 내가 번 것으로만 당하고 싶다는 알량한 자존심.

그런 주제에 고작 배변 패드를 못 사서 망설이는 게 너무 볼품 없어서 한숨이 다 나온다.


패드를 쓸까, 말까.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다.


만약 패드를 깔면 매일 아침마다 말라붙은 걸 치운답시고 물로 불리니 뭐니 안 해도 다.

대충 환기를 하거나 탈취제를 칙칙 뿌리고 우리 노견의 발만 닦으면 다.

진짜 편할 텐데, 진짜진짜 인생이 쾌적할 텐데.


항상 좁아터졌다고 생각했던 집이 막상 배변 패드를 깔려고 하니까 아주 망망대해가 따로 없다.


자주 싸는 곳에만 패드를 까는 게 나을까?

쓰레기도 덜 나오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귀신 같이 패드가 안 깔린 곳에만 싸면 어떡하지?

그러면 진짜 못 참을 거 같은데.


저번에 동물병원에 가니까 기저귀도 팔던데?

소변만 받고 대변은 밖으로 싸게 되어있던데.

그거야 약간 느슨하게 채워서 기저귀 속으로 대변이 들어가게 하면 될 일이지만

그러다가 요도감염이나 그런 것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사람도 그렇지만 항문에서 균이 옮겨가면서 자연히 요도 감염이 일어나기도 한다

굳이 걱정할 필요는 없는 걸까.


내 미래를 고민하기에도 머리가 터지는데 노견 뒤치닥꺼리까지 하려니까 난이도가 장난 아니다.

대소변 실수하는 것만 빼고는 치매 초기에서 더 심해지고 있지는 않은지라

그것만으로 하늘에 충분히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욕심이 많, 하하!

그런데 욕심 좀 부려도 되는 것 아닌가.

반려동물의 똥을 좀 편하게 치우고 싶다는 게 잘못된 욕망은 아니지 않은가.


아주 좁아터진 방 안에 패드 대신 한숨만 쌓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9. 충분한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