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린 강아지와 함께, 23주차
초복에 생긴 일이다.
나이는 20살 하고 몇 살을 넘었지만 재산이라고는 알바비가 전부인 나는
행복한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모종의 일로 학교를 방문해야만 했다.
상대방이 말하길, 절차가 복잡하지 않으니 잠깐 왔다 가랬지만
그렇게 간단한 일이라면 그냥 원격으로 해결 보는 게 서로에게 좋은 길이 아닐까?
낭비되는 나의 교통비와 이동 시간은 당신이 보상해 줄 것인가?
아무튼.
적당한 증오를 마음 속에 품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다가
초복이라며 닭을 판다는 광고를 봤다.
어느 개나 다 그러겠지만, 우리 노견은 특히 닭고기라면 사족을 못 썼다.
인간이 몸보신하듯이 개도 몸보신이 좀 필요한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 닭 한 마리를 살까, 짧게 고민을 했지만
닭을 해체하는 법도 모르고 닭죽 끓이는 법도 몰랐기에 그만두었다.
그렇다고 해서 초복을 그냥 지나갈 수만은 없었다.
기념일은 그 날을 핑계 삼아 진심을 전하는 것은 물론이고
돈과 시간 낭비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니까.
실력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 참 슬프고 안타까운 점이었지만,
실력 있는 사람이 만든 제품을 내가 돈으로 사면 된다.
이러려고 돈 버는 것 아니겠는가.
애용하는 반려동물 쇼핑앱에 들어가 닭 관련 간식을 싹쓸이했다.
닭죽부터 닭가슴살, 통조림, 쿠키 등등.
간식 급여를 제한하고 있는 우리 노견에게는 아마 반 년 어치는 될 것 같다.
그래도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어 학교에 들러 용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계란을 한 팩 샀다.
삶은 닭은 못 주지면 삶은 계란을 줄 수 있었기에
나름 비장한 마음으로 구매를 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반숙란도 15개씩 팔더라, 세상 참 신기하다.
우리 노견에게 으깬 삶은 계란을 주면서도 닭고기를 주지 못한 것이 여간 아쉬워서
유튜브로 닭죽 만드는 영상만 푸지게 돌려 봤다.
그러다가 모 영상에서 '뼈 바르기 어려워서 순살을 쓰는데, 나름 괜찮다'는 댓글을 봤다.
그 순간, 나는 돈 쓰고 멍청한 사람이 됐다.
나는 왜 저 생각을 못 한 걸까? 고등교육, 대학교, 이런 거 다 부질 없다.
우리 노견이 계란 흰자를 씹으면서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정을 다스리려고 했지만
나에게 남은 것은 많은 계란과 구멍난 잔고, 그리고 패배감 뿐이다….
하여튼 이 멍청함을 발판으로 삼아 곧 다가올 중복이나 말복에는
순살을 사 닭죽을 한 번 끓여볼까 한다.
우리 노견이 안 먹으면 내가 먹으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