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치매 걸린 강아지

일기인 척하는 소설.

by 휴지

00. 기록과 장사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나는 일평생을 강아지와 함께 살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함께 지내기 시작했고 대학을 졸업한 지금도 여전히 같은 방에서 산다. 햇수로만 따져도 약 20년이 되는 셈이다. 어릴 때는 동생 같았지만, 이제는 자식 같지 않을 수가 없다.


어릴 때는 통통 튀면서 뛰어다녔던 우리 애가 점점 체력이 쇠약해지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다. 큰 병치레는 없지만서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는 현실이 가끔은 우울하다. 거의 20시간 가까이 잠만 자는 모습이 유독 선명하게 다가오는 날에는 슬슬 마지막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은 핸드폰을 켜서 장례식 비용과 유골함 값을 알아 봤다. 아직 장례식장은 고르지 못했다. 그건 1년 후로 미루기로 했다.

아직 우리 애는 건강하고, 죽음이 영영 오지 않길 바라지만 그럴 일은 없으니까 아무튼 1년 후로 미루겠다.


이제는 어떻게 아이를 떠나 보내야 할지 고민을 했다. 흠, 예전부터 분리불안 장애는 얘보다 내가 심했지. 잠깐 여행을 가느라 떨어져 있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은데 생과 사로 갈라지게 되면 나는 어떻게 대응할까.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고 우선 아이가 살아있는 모습을 남겨보고자 굳은 머리를 굴렸다.


제일 처음 떠올랐던 것은 '굿즈'였다. 반려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면서 TV와 유튜브, SNS 등지에서 수 많은 사람이 자기 반려동물을 자랑한다. 많은 보호자가 반려동물을 찍은 사진이나 모습을 그린 그림을 굿즈로 파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수요만 충분하다면 창작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금전적인 이득으로 연결되는 세상이니까. 나 또한 인터넷에서 동물이 나오는 영상을 적극적으로 찾아보곤 했다.


'우리집 강아지를 모티브로 캐릭터를 만들어 볼까?'


그런 생각이 떠오른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지 싶다. SNS에 일상툰을 그려서 올릴까, 카카오톡에서 쓸 이모티콘을 만들어 볼까, 아니면 직접 찍은 사진이나 영상을 올려 볼까? 고르기 어려웠다.


며칠 동안 고민을 거듭했고 결국 나는 마음을 굳혔다. 우리 애로 돈을 벌지 않겠다고.

우리 애를 사랑하고 예뻐해 주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물론 아주 기쁜 일이다. 생전 이 아이를 직접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 자기가 낳고 키운 것처럼 사랑을 주는데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 마음에 공감해 주는 사람이 하나 둘 늘어나는 것을 반기지 않을 이는 없다.

그러나 나는 통장에 찍히는 액수에 눈이 멀어 아이를 상업적인 시선으로만 보게 될까봐 그것이 너무 두려웠다.

나는 항상 돈에 쪼들리고 통장을 뒤척이며 계산기를 두들겨 살아야 하는 프리랜서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애를 불특정 다수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결국 수익이 꽤 괜찮아지면 얘를 팔아 먹기 위해 끔찍한 짓을 할지도 모른다.

성공은커녕 아직 시도도 안 한 주제에 너무 과한 걱정이 아니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레 겁 먹를 만큼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강산이 바뀐다는 10년, 그 두 배의 시간을 아이와 같이 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랑, 변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기는 어려운 일이다.

반려동물을 아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 변질되는 사례는 수 없이 많이 접했다. 내가 그 길을 걷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은 없다. 그래서 포기했다.


게다가 인터넷에서 우리 아이의 모습이 영원히 존재하리라는 것도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가 죽어도 이 아이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은 언제나 존재할 것이며, 어딘가의 쓰레기장에서는 아이의 얼굴이 찍힌 굿즈가 나뒹굴 것이다. 쓰지 않은 스티커에는 먼지만 쌓여갈 것이고 글자가 프린팅 된 머그컵은 깨져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게 싫어서 다 구석에다 밀어 놓고는 두 번 다시 쳐다보지 않았다.


그런 내가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까닭은 <내가 아이를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억은 유한하지 않으니까 어떻게든 흔적을 남겨야 했다.

당장 이 아이가 어릴 때 어땠는지, 15년 전에 어땠는지, 10년 전에는 어땠는지, 당장 5년 전, 3년 전에는 어땠는지 기억 나질 않는다. 열심히 머리를 굴려 봐야 떠오르는 것은 간식을 들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재롱을 부리는 모습, 3분 내내 쓰다듬 받았음에도 손을 거두면 더 쓰다듬어 달라고 앞발을 휘적이던 모습, 추위에 덜덜 떨면서도 눈밭을 열심히 쏘아다니던 모습 등 어느 강아지에게나 볼 수 있는 보편적인 모습 뿐이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건 '강아지'가 아니라 '아이'였다.

아이가 세상을 떠도 나는 살아가야 한다. 이미 과거는 흐려졌지만 늦게나마 현재를 기억해야만 했다. 그래야 미래 언젠가, 아이가 그리울 때 되짚어 볼 수 있을 테니까. 강아지 별로 떠나버린 아이가 문득 보고 싶을 때 좌절하지 않아도 된다.


거대한 사랑에 비해 인간의 뇌 성능은 하찮다. 1년도 안 돼서 아이를 잊어버렸다는 절망감에 휩싸일 것은 불 보듯한 일이다.


아직 늦지 않았기를 기도한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소설을 진심 담아 한 자 한 자 모자란 실력으로 적어보겠다.


뭐, 여기서 조금 내 사심을 담아 발언하자면 내 소설이 가져 올 부가적 효과로 <반려동물을 인형놀이쯤으로 생각하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나의 생명을 키우는 일이니 뭐니 그런 거창한 것을 얘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일반적인 사람들이 소비하는 반려동물의 이미지는 건강하고 해맑으며 그야말로 생동감 넘치는 생명이다. 단순히 화면 너머로 보기만 한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냐만은 당신이 반려동물을 키우기로 결심했다면 위에 나열한 것은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해라. 모든 생명은 늙고 병들어 도움의 손길 없이는 살아가지 못하게 된다는 것 또한 기억하길 바란다.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평생 지능 2~3세짜리 아기 외계인을 돌보는 것"과 같다. 그 이유는 첫째 사람과 반려동물은 말이 안 통하고, 둘째 사람과 반려동물은 아주 다른 환경에서 진화했기 때문에 아주 다른 문화를 가졌으며, 셋째 중소형 반려동물은 최대 지능이 2~3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똑똑하다고 그렇게 칭찬해대는 골든 리트리버와 보더콜리가 약 5~7세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떠올려라.


당신이 좋은 마음을 가지고 행하는 모든 것이 반려동물한테는 거지 같이 느껴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나도 이것 때문에 피를 몇 번 봤다.

동물에겐 이성이 없다. 만약 반려동물이 당신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그 날카로운 송곳니로 가차없이 살을 물어버릴 것이다. 왕!


반려동물도 나이가 들면 아프고 병이 들며 어쩌면 치매가 발병할 수도 있다는 것을 꼭 명심했으면 좋겠다.

치매 걸린 반려동물은 돌보기 아주 힘들다.

당신이 자고 일어났을 때 똥 발도장을 온 방바닥에 찍어 놓은 현장과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

치매 걸린 우리 강아지는 대소변을 전혀 가리지 못하고 정신 사납게 빙글뱅글 돌아다니고 각종 영양제와 치매 약을 매일 챙겨줘야 한다. 게다가 눈속임용 통조림(약을 그냥 주면 안 먹으니까)도 사야 하고, 배변 패드와 탈취제를 사고, 만약 신장이나 간이 안 좋으면 처방 사료를 먹여야 할 것이니 이것만 해도 달에 15만원은 껌값이다.

밥 주기, 약 주기, 간식 주기, 씻기기, 재우기, 산책하기, 뒷정리, 사고 수습, 병원에서 검진 받기, 매달 반려동물용 생필품 사기 등 육체 노동조차 다 당신 몫이다. 대신 해 줄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제발 희생할 자신 없으면 시도도 하질 마라.


당신이 심심하고 무료한 하루를 떼우기 위해 들인 반려동물 한 마리가 월마다 어마무시한 생명삯를 필요로 하는 골칫덩어리가 될 것이라는 현실을 꼭 깨우치길 바란다.


이런 마음을 담아 일기인 척하는 소설을 쓴다. 앞으로 벌어질 이야기는 전부 사실이며 디테일은 전부 허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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