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알게 된 것은 무수히 많다. 어느 누가 자연분만이 회복이 빠르다고 했는가. 조리원에서 내내 진통제를 먹고 퇴소 후에야 그나마 조금 앉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은 더뎠다. 다들 신생아는 2시간마다 깨서 밥을 줘야 한다고들 했지만, 우리 아기는 30분마다 깼다. 또 100일까지가 진짜 지옥이고 '100일의 기적'이 온다고 했지만, 오히려 누워만 있을 때가 천국이다. 이유식을 시작하니 정말 세상 정신없다.
힘든 것만 알게 된 것은 아니다. 당연히 아기는 정말 너무 예쁘다. 내가 가진 것 중에 제일 예쁘다. 내 최고의 보물이다. 새벽 수유가 그렇게 힘들다고 했지만, 세상이 모두 잠든 시간에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잠결에 모유를 먹고, 꾸물꾸물 다시 잠드는 아기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그냥 황홀하다. 지금도 그때가 너무너무 그립다. 내가 이렇게 아기를 예뻐할 줄이야, 이렇게까지 아기가 예쁠 줄이야 정말 정말 꿈에도 몰랐다. 자다가도 아기의 작은 숨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벌떡 일어나 아기의 작은 코끝에 손가락을 대어보고, 아기가 조금이라도 오래 자면 '왜 이렇게 오래 자지?' 하면서 그냥 눈이 떠졌다. 인생의 반은 수면 중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내가(어쩌면 깨어 있는 시간보다 잠든 시간이 더 많을 지도….)
그런 것들보다 진짜로 알게 된 건 따로 있다. 내가 얼마나 많이 사랑받았었는지, 우리 엄마에게 그리고, 아빠에게. 두 분이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렇게도 원망하고 미워했는데…. 엄마랑 아빠는 세 살 터울의 오빠만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기를 키우면서 어렴풋한 기억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내가 아기를 다리 사이에 앉혀 안고서 놀 때마다 우리 엄마가 어린 나를 그렇게 안고 항상 드라마를 봤던 기억, 아빠가 맨날 오빠랑 나랑 팔씨름을 시키고 내가 바득바득 이겨 내면 오빠보다 힘이 세다면서 자지러지게 웃고 떠들던 기억 같은 것들…. 어쩌면 아빠와 나의 기대를 충족해 주기 위해 조금 져주었던 오빠도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을까? 엄마와 아빠는 동생만 좋아한다고….
아기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아빠가 참 미웠다. 성실함이 부족한 나를 마주할 때마다 아빠를 닮은 것 같아 아빠를 더 미워했다. 내가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아빠는 늘 나를 조수석에 태우고 다녔다. 일하는 공장에 데려가고, 낚시터에 데려가고, 아저씨들과 함께 포장마차도 가고 노래방도 갔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그땐 그랬다.) 아빠는 일보다 노는 일이 많았다.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라기보다 사업이 잘 안 돼서라고 치자….) 그래서 내 방이 없다는 걸, 엄마가 그렇게 일을 한다는 걸 조금 더 커서 깨달았다. 아빠에게 처음 아기를 보여주던 날, 한 달음에 와 아기를 안고서 사진을 찍어 달라는 아빠가 참 신기했다. 젊었던 아빠가 떠올랐던 걸까? 그냥 그렇게 아빠에 대한 미움이 지나갔다. 사라졌다기보다 지나갔다. 여태 아빠를 따라다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아빠는 맨날 놀기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얼마나 예뻐했으면 가는 데마다 나를 데리고 다녔을까? 귀찮지도 않았을까?
먼 시골에도 아빠는 곧잘 오빠랑 나를 데리고 갔다. 시골 고모네 집 앞 계곡에서 아빠랑 오빠랑 한바탕 물놀이를 하고 어두워져, 젖은 채로 걸어 돌아가는 길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반딧불이를 잡았다. 서울에 가면 엄마한테 주겠다며 떼를 쓰니 아빠는 버려진 페트병에 내가 잡은 반딧불이를 담아주었다. 그 반짝이는 페트병을 소중히 안고 하룻밤 자고 일어나자 페트병에는 벌레만 가득 차 있어 앙앙 울었다. 나는 운 기억밖엔 없는데 그 옆에서 웃고 있던 아빠가 어렴풋이 보일랑말랑하기도 한다. 아빠는 그렇게 나를 예뻐했고, 나도 아빠를 사랑했다.
아빠는 나에게 내 방을 만들어 주지도 피아노를 사 주지도 못했다. 하지만, 나는 아빠에게 또 엄마에게 사랑받았다. 그걸 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아기가 너무 예쁠 때마다 (너무너무 힘들 때도 많지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두 분께 받은 사랑이 있어서 우리 아기에게 이렇게 사랑을 줄 수 있구나, 싶어서. 그리고 나는 또 우리 아기에게 자기만의 방을, 피아노를, 백화점 운동화를 사 줄 수 있다. 나의 결핍을 대물림하지 않을 수 있고, 내가 받은 사랑을 베풀 수도 있다. 물론 내가 겪은 결핍과는 또 다른 결핍이 생기겠지만. 아…! 아기야 엄마가 절대 해줄 수 없는 게 있단다. 동생은 없어. 그 정도 결핍은 괜찮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