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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형 Feb 09. 2018

서울

여행 일기

서울

일을 쉬게 되었다. 어찌보면 그만둘 수 없어 도망쳐 나온것이라 해도 맞다. 나는 쉬기 전부터 무작정 서울로 떠나고 싶었다. 떠나기를 마음먹고 짐을 이주전부터 싸기 시작했다. 짐을 하나씩 채워갈 때마다 서둘러 서울에 가고싶었다. 쉬더라도 그곳에서 쉬고 싶었다. 좀 더 멀리. 이곳으로부터 먼 곳에서


노량진 고시원

일주일을 걱정없이 서울에서 보내기로 마음먹은 건 아마 잠자리 때문이었을거다. 노량진에서 공무원을 준비하는 언니 고시원에서 자기로 했다. 서울에 도착해 차디찬 칼바람를 뚫고 노량진 역에 도착했다. 마중나온 두달만에 보는 언니 얼굴이 무척 반가웠다.

고시원을 도착해 나는 많이 놀랐다. 좁다. 좁다 말만 들었지 이렇게도 좁을수가 있나 싶었다. 화장실과 책상 그리고 침대가 전부인 공간에 나와 언니가 덩그러니 섰다. 장장 일주일을 맘편하게 이곳에 자려한 내 이기심 때문에 언니한테 미안함이 밀려왔다.


서점

책방투어.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남는건 시간이지만 백에 백을 가볼 순 없으니 마음에 드는 두 곳을 가자했다. 저번 서울여행 때 들리게 된 최인아 책방을 다시 찾았는데 여전히 멋졌다. 내가 원하는 책을 추천해주고 찾는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책방이라 좋았다. 무엇보다 아늑하고 분위기가 멋지다.

그러다 함께 있던 친구가 광주로 떠나자 자리를 옮겨 퇴근길책한잔에 들렀다. 깜깜하고 경사진 골목으로 들어가면 작게 들어서있다. 길냥이도 쉬다갈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는 친절하신 주인장님이 운영하시는 곳이다. 찬 공기였지만 술과 함께할 수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독립출판물 서점이라서.

두 서점에서 구매한 <개인주의자 선언> 그리고 <소란스러운 자아>. 둘다 책장 펴고 마음에 드는 구절 때문에 구매한 책이었는데 좋은 선택이었다. 책이 있으면 낯선 공간에서도 편안해진다.


영화 '코코'

하루는 온전히 내 시간을 갖자고 친구도 언니도 안녕하고 당일 가고 싶은 맛집과 카페를 적어 두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깨질 것 같고 배도 콕콕 쑤시며 아프길래 방에나 처박혀 있자 했다. 아침부터 독서실을 나서는 언니는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주며 영화 '코코' 나 보며 쉬라했다. 자꾸 "마마꼬꼬- 마마꼬꼬!" 거리길래 뭐냐고 물었더니 보면 알게 된단다.

깨지는 머리를 붙잡고 어떻게든 편한 자세를 잡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애니를 이끄는 소년이 코코일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마지막 끝나는 순간 아! 싶었다. 노트북을 끄며 언니한테 카톡을 보냈다. "마마꼬꼬! 우리 용서는 못해도 잊지는 말자"

이 애니메이션 영화를 여러명에게 추천받았는데 그들도 나같은 감동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오랜만에 눈물 콧물을 쏟았다.


걱정없이 펑펑 쓰고 싶었다. 물론 아끼며 저축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쓸땐 쓰고 안쓸땐 안쓰는 사람이니까. 텀 없이 일만 해오다 얼마만에 가지는 제대로 된 휴식인데 맛있는 것을 마음껏 먹고, 너도나도 다 가는 예쁜곳에는 나도 가고, 좋은건 사고 싶었다. 수중에 있는 돈 다 챙겨 떠나와서는 여기서 잠깐이라도 망설이고 싶진 않았다.

서울로 보낸 두딸이 걱정된 엄마는 하루에 한번씩 전화를 하신다. "밥은 먹었니? 오늘은 어디가니?" 등의 안부를 물으신다. 어쩌다보니 엄마 카드를 가지고 서울로 오게 되버렸는데 "필요하면 써도 돼"라는 엄마 말에 펑펑 쓰던 것을 멈추게 되었다.

걱정을 안겨드리고 온 것 같은데 나 혼자 마음 좋게 쉬고 편하게 쓰는 내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소음

기찻통 삶아 먹은 성량은 아닌데 이 작은 고시원 방에서는 내가 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소음 같았다. 그리고 역시나 나도 모르게 소곤거림에서 커졌던 말들은 옆방에 들려 주의를 듣게 되었다. 물건을 떨어트려도 똑똑, 밤늦게 씻어도 똑똑, 엄마와 통화를 하다 웃어도 똑똑 거렸다. 스트레스 였다. 처음엔 웃으며 젠장! 했지만 어느 순간 그들도 분명 나처럼 소음 아닌 소음을 내고 싶겠다 생각했다.

아침일찍 일어나서 씻는 물에 정신을 차리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저마다의 길로 나서는 이들이기에 미안해졌다. 고단함을 씻어내고 바로 옆 작은 침대에 곯아떨어지는 이들이 있기에 내 작은 행동 하나 하나를 조심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떠나기 전 작은 쪽지 하나 남겨야겠다.


서울 야경

이번 서울 야경은 마음으로만 담고 싶다며 사진을 찍지 않는 친구 옆에서 나는 찰칵찰칵 소리내며 앨범에 담았다. 급 남산타워 행이었고 날씨도 무척이나 추웠지만 안갔으면 후회할 뻔 했다. 역시나 사진에는 그 장관이 담기지 않았지만 뭐 나름.

저 너머에는 다른 모습의 야경이 있고 또 그 너머에도 또 다른 모습의 야경이 있겠지만 이곳에서도 그곳에서도 느끼는 벅차는 감정은 똑같았을 거다.

야경을 보다 날이 풀리면 남한산성 둘레길에 앉아 캔맥주 한잔 하고 싶다던 친구 J양. 야경 보러 가자고 말해줘서 고맙다 친구야.

4월에 또 오자!


ps. 무엇보다 언니야 나를 재워줘서 고맙고 환승역 어딘지 친절하게 그림까지 그려서 알려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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