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형 Nov 16. 2015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다행인 하루

며칠 전부터 비는 여리게, 그러다 억세게 내리기를 반복했고 흐림은 지속되었다. 친구는 오랜만에 쉬는 날이라며 주말에 가까운 곳으로 놀러 가고 싶다 말했다. 우리는 전날 적당한 곳을 한두 군데 찾아 보다 잠에 들었고, 당일 늦은 오후가 돼서야 일어났다. 아쉬운 대로 만나 저녁이나 먹자고 했다.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니, 내 딴에 썩 달갑지 않던 비는 그쳐있었다. 가을(어쩌면 겨울)이라 어둠은 벌써 찾아와 있었지만 그런대로 날씨는 맑은 편 이었다. 놀러 갔으면 좋을 날씨였다. 추울법하지만 바람은 꽤나 적당했고, 왠지 모를 기분 좋음이 아침이었어도 지속되었으리라 생각했다.

가게로 들어가니 3-40분 정도는 기다려야 된다길래 당장 나와버렸다. 눈에 보이는 다른 가게로 들어가서 순조롭게 메뉴를 주문하는데 그다음부터가 순조롭지 못했다. 아르바이트생들은 테이블 번호를 외우지 못했고, 손에 들린 음식들은 주인을 못 찾기 일쑤였다. 우리에게 건넨 영수증은 우리의 것도 아녔으며 거기다 음식 맛도 별로였다. 친구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 먹어야겠다며 흥분했다. 헛배가 부른 상태로 카페를 찾는데 커피까지 맛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다.

다행히도 맛있던 커피를 다 마시고 집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방 아무 자리에 누웠다. 대지(고양이 이름)는 내가 자는 동안 내 냐옹-냐옹 거리 더니, 아직까지 울고 있었다.

어제는 대지 때문에 내가 운 날이었다. 대지가 우리 집에 온지는 5개월쯤 되었는데 성별을 어제가 돼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단추 같은 것을 달고 다니긴 했는데 그것이 수컷을 뜻하는 건지 몰랐다. 언니가 데려 올 때부터 여자라길래 나도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다 며칠 전부터 엄마는 대지가 달고 다니는 단추 같은 것을 콕콕 찌르며 수컷일 수도 있겠다고 했다. 나와 언니는 그럴 리 없다며, 대지가 암컷임을 확인시켜주겠다며 검색창에 '수컷 암컷 고양이 구별법'을 쳤다.

대지는 수컷이었다. 키우는 동안 "언니가~"를 입에 달고 살던 나였는데, "우리 막내딸~"하며 예뻐하던 엄마 아빠였는데, 사실 나는 누나였고 대지는 우리 집 막내아들이었다. 이렇게 예쁘게 생긴 아이가 수컷일 수 없다며 나는 대지를 안고 울었다. 암컷인지 수컷인지, 그것이 대지를 사랑하는데 있어서 전혀 중요한 일은 아니었지만 대지한테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

이제보니 늠름한 대지(그)의 모습

울다가 웃고 기분 좋다가 역정까지 내고 그러다 다시 기분 좋아지고, 하루들이 참 그랬다. 요즘 밤낮이 바뀌어서 오전 강의 출석률이 저조했는데, 다행히 월요일은 공강이라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또 불행하게도 오늘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오늘도 참 그런 하루를 보내게 될 것 같다.   이제는 잠을 청해야지. 모두 좋은 새벽!

작가의 이전글 바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