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그녀
김소월의 시가 아직도 나를 울릴 때, 그때 내가 가야 하는 시의 길이 정해지는 것이다. 서정주, 백석의 시. 서정시의 본령으로 들어가는 시. 만일 내가 <딸기>라는 시를 쓴다면 사람들은 딸기를 볼 때마다 그 시가 떠오르는, 그런 것.
문학에 대한 절박함은 예술에 대한 절박함인지 말에 대한 절박함인지를 묻는다.
나의 몸은 나의 과거이다. 나에게 남겨진 그 많은 것이 내 몸의 상처를 이룬다. 내 몸은 내 과거이고 내 현재를 재현한다.
비가 오려는지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꽉 차 있다. 사과나무 아래에서 아직은 푸르고 작은 열매들을 보면서 떨어지는 모든 것은 무거움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하루에도 몇 번은 절망한다. 하루에도 몇 번은 희망한다. 그건 아주 정상적인 일이다.
글쎄, 뭐가 이렇게 사납게 나를 흔들어버린 것일까. 아마도 내가 두고 온 모든 것. 나는 마음이 다치기 쉬운 사람이니 떠나온 것이 더 잘한 일이었는데도 마음은 아직 이렇게 아프다. 그래서 힘들다. 하지만 나가자. 나는 그곳에 두고 온 것들이 사실 실체가 없다는 걸 잘 안다.
언젠가 쓸 수 없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나는 귤을 쪼갰다. 귤 향! 세계의 모든 향기를 이 작은 몸 안에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살아오면서 맡았던 모든 향기가 밀려왔다. 아름다운, 따뜻한, 비린, 차가운, 쓴, 찬, 그리고, 그리고, 그 모든 향기. 아,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가기 전에 나는 써야 하는 시들이 몇 편 있었던 것이다.
좋아하는 일 하며 밥 벌어먹고사는 삶.
이건 어쨌든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삶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선택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된 것, 그럴 수밖에 없던 것.
시가 그녀이고, 그녀 자체가 시와 같다. 분리 시키는 것은 아마도 어려운 일 일듯싶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온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써 내려갔다. 제목은 가기 전에 남긴 시글들이지만, 분명 살기 위해 남긴 글이 아닐까.
그리고 읽을수록 더욱 분명해지는 건 그녀는 글을 쓴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썼기에, 글 위에, 책 속에 살아있다는 것.
병과 싸우면서도 한순간도 놓지 않았던 글. 그것(자기 자신이라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다)에 대한 갈망.
이래도 사유와 글이 귀중하지 않은가? 인생이 그냥 흘러가는 시간일 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