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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형 Oct 23. 2015

머지않아 발걸음이 끊기는

내 어머니가 살던 곳

30분 남짓 차를 타 도착한 곳. 여전히 조용함이 반겨주는 방식 인 이곳. 바람은 불다가도 어느 순간 멈추고, 경운기 소리에 돌아보면 아직도 저 만큼 가있고, 일하는 이의 얼굴을 보면 항상 내가 보던 이의 얼굴인 곳. 내 어머니의 어머니가 살고 계신 곳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할머니가 나비(온 동네 길고양이들을 나비로 칭하게 된 날은 언제부터일까)라 부르는 네다섯 마리 정도의 고양이들이 저마다의 장소를 찾아 부르면 언제든지 도망갈 듯한 자세를 취하며 그 자리를 조용히 지키고 있다.

어머니는 항상 그래 왔듯 그녀의 건강을 묻고, 밭을 살피고, 감나무를 흔들어보고, 괜히 집안 곳곳을 손으로 다 헤집고 다닌다. 마루에 걸터앉아 콩을 까고 있는 그녀와 나의 어머니는, 들어도 반 정도를 해석해주지 않으면 나는 이해하지 못할 말들로 잘도 대화를 나누신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앞에 두고, 침대에 누워 나른한 시간을 핑계 삼아 잠을 청해보려 했다. 1분도 지나지 않아 윙윙 파리 소리에 눈을 떴고, 이 곳이면 충분히 살겠노라 했던 생각을 파리 소리 때문에 딱 끊어야 했다.

우리 가면 저녁 차려 드시라고 어머니는 그동안 찬을 만드셨다. "불에 잠깐 올리면 돼" "나물은 무쳐서 봉투에 담아놨어" 잠깐 나와서 하면 될 말을 굳이 부엌 너머로 큰 소리를 낸다. 그녀는 들으셨을까 대답 없이 마저 콩을 까신다.


분명 빈 손으로 온 듯한데 갈 때는 항상 두 손 가득이다. "나오지 마셔. 그냥 갈 테니까", 항상 건네는 마지막 인사와 함께 어머니와 나는 대문을 나섰다. 차에 타는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도착하면 연락 한 번 남기라는 그녀의 한마디가 왜 그날따라 서글프게 느껴졌을까.

그 조용한 곳에, 그녀 혼자 남겨질 저녁이 생각만으로 외로웠다. 어둠 속에 익숙해지는 이가 과연 존재할까에 앞서 잠시 머물고 간 자식의 온기는 금방이면 식어버리겠지 하는 생각에 그녀의 저녁이 더 신경 쓰였다.

다음에 또 올게, 엄마


머지않아 발걸음이 이 곳에 향하지 않을 날이 오겠지. 마루에 앉아 콩을 까고, 나비들이 반겨주고, 파리 소리에 잠이 깨는, 내 어머니가 살던- 내 어머니와 그녀의 추억이 가득한 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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