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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형 Dec 30. 2016

반가운 선생님들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송년회다 망년회다 딱히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 해 가기 전엔 얼굴이라도 봐야 하지 않겠냐며, 시간 맞추기 어려운 고등학교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밥을 먹고, 술자리를 그다지 가지지 않던 우리라 자연스레 카페를 찾았다. 밥을 먹으면서도, 커피를 마시면서도 수다였는데 고작 8시였다.

우리 중 몇 명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종종 선생님들과 연락하며 지냈는데, 언제든 시간 나면 연락하라던 선생님의 말이 생각나 우리가 언제 또 이렇게 모이겠냐며 연락이나 드려보자 하고 문자를 보냈다. 그랬더니 1분도 지나지 않아 '어디니 빨리 여기로 와라' 하고 답장이 온 것이다.

그렇게 급작스러운 만남이 이루어졌고, 그곳엔 보고 싶었던 선생님들이 계셨다. 물론 반가움이 앞섰지만 우리를 기억하실까 하는 마음에 걱정도 되고, 졸업하고 처음 뵈는 거라 긴장되기도 했다. 문 앞에 뻘쭘하게 서있다가 반가운 선생님들 이름을 부르며 들어갔는데, 선생님들께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셨다.(아마도 선생님들 이름까지 기억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신 듯했다) 한 명씩 차례대로 얼굴을 보시면서 '어.. 어! 그래 누구! 누구! 야! 이제 기억난다' 하시는데 사실 우리를 완전히 기억하시기까지 맥주 몇 병이 쌓였다고 한다.

그래도 우리를 기억해주시다니 조금은 놀라웠다. 너희 학교생활은 어땠다, 교복이며 체육복이며 머리는 어떻게 하고 다녔다 하시는데 오히려 선생님들의 기억력이 더 좋으신 듯했다.

자리를 옮겨서는 열띤 토론의 장이 열렸다. 요즘 학생들은 어때요?부터 시작해서 평소에 선생님들께 궁금했던 질문들을 했다. 그러다 선생님 한 분께서는 요즘 고민이 있으시다고 했다. 예전만큼 수업에 대한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수업에 뒤처지는 아이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데 그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까 그게 참 답답하다고 하셨다. 자신이 이끌어 줄 수 있는 방법은 없고, 풀 죽은 아이들 앞에 서서 그저 수업하는 기계가 된 것 같다고 하셨다.

고등학생 때, 단어장 하나 가지고 다니기 싫어 외울 분량만큼만 뜯어 다니던 내가 생각났다. 그러다 성적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올랐을 때 선생님께서는 문화상품권 5000원이 든 봉투와 함께 짧은 편지를 써주셨다. '열심히 하는 너를 포기하지 말라. 이 뿌듯함을 잊지 말고 앞으로도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라고. 그때를 생각하니 선생님께서 털어놓으신 고민이 왠지 좀 짠하게 느껴졌다.

결국 2차, 3차까지 가서 쉴 새 없이 술을 마시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덕분에 선생님들의 노래까지 들을 수 있었고 재밌는 율동(?)도 볼 수 있었다. 새벽 한시가 조금 넘었을까 선생님들께서는 '오늘 1교시 수업이야....'라는 말과 함께 다음을 기약하며 집으로 향하셨다. 원래는 '선생님 저희 내일 1교시 수업 들으러 가야 해요..'했어야 하는데, 뭔가 바뀐 것 같아 웃음이 났다.

사실 선생님께서 우리를 곧바로 기억해주지 못해 서운할뻔했는데 이 말씀으로 서운함은커녕 찡한 마음과 함께 감사한 마음이 생겼다.


"너희가 입학하면 우리는 너희 이름을 외우기 바빠. 그러다 기껏 이름 외워놓으면 너희는 졸업해버려. 그렇게 새로운 학생들은 내 눈앞에 또 몇백 명이 생기고, 그러는 동안 너희는 머릿속에서 잠시 밀려나는 거야. 그 친구들이 졸업하면 또 밀리고, 밀리고, 아주 밀려나는 거지. 그래도 다 기억나. 이렇게 찾아와서 선생님! 하고 부르면 너희 얼굴 보면서 밀어냈던 이름들을 하나씩 하나씩 끄집어 내는 거지."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그날은 왠지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았다. 보고싶었던 선생님들을 만난 날, 교복입고 선생님을 따라다니던 우리가 선생님들과 처음으로 술잔을 기울이던 날, 그리운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함께했던 날로


ps.비싼 장어 사주셨는데 많이 남겨서 죄송해요. 다음엔 고기 먹으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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