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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May 30. 2018

열다섯번째 요가이야기

우스트라아사나



우리들은 모두 각자의 시간을 산다.

계절을 만나는 길에서 매번 올려다보는 나무가 있다. 느림보 나무. 지난 가을에는 주변의 모든 나무들이 빨갛고 노랗게 물들 때 혼자 푸르르다가 다른 나무의 단풍잎들이 다 길 위에 소복하게 쌓이고 겨울을 맞이할 즈음 뒤늦게 붉게 단풍을 물들이고 때를 맞이했었다. 그게 너무 귀여워서 한참동안 올려다보다가 다들 울긋불긋 예쁠 때 혼자서 서운하지 않았을까, 가만히 생각하기도 했다. 요즘 그 나무는 아직까지도 크기도 빛깔도 여린 잎들만을 품고 있다. 주변 나무들이 모두 점점 울창해지는데.

나는 대부분의 일들을 조금쯤 지각을 하며 살고 있다. 대학교의 졸업도 친구들보다 한참 늦었었고, 대학원 입학과 석사 학위를 딴 시기도 함께 입학한 이들보다 늦고, 요가를 시작한지는 오래 되었어도 몰입을 하게된 시기가 늦어 여전히 부족한 것이 아주 많다. 몸을 쓰는 것도 마음을 쓰는 것도 뭐 하나 빨리 되는 것이 없는 삶이다. 그래서 속상해질 때면 언젠가 읽었던 손석희씨의 글이 생각난다. '나는 내가 지각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로 문을 여는 글이었다. 그러나 이미 늦어버렸기에 오히려 조바심보다 여유를 갖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비행기에서 밖을 바라볼 때 보는 풍경과 기차 안에서 볼 수 있는 풍경, 두 발로 걸으면서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은 모두 제각각이다. 제각각 아름답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 없이 모두 아름답고, 떠올릴 때면 왜인지 그리워진다. 아마 모두들 그렇지 않을까.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도 그렇기에 완전하고, 느리게 지나가는 시간도 그렇기에 완전하다. 빠른 속도감 덕분에 만날 수 있는 비행기 밖 구름 모습이 느리게 걸으며 마주하게 되는 늦봄의 바람과 아카시아 향기보다 못하지도 더하지도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나도, 늦어도 괜찮고 가끔은 서둘러도 괜찮다. 다양한 속도 안에서 지금의 나를 정직하게 바라보고 그 순간에 볼 수 있는 풍경을 무엇과도 비교하지 않으며 내 안에 담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누군가가 맞춰둔 시간에 나를 꿰어 넣으려 하다보면 내 인생은 지각이지만 나의 시간으로 모든 것을 다시 정리해보면 결코 늦은 일이 없다. 다 때가 되어 그 때에 했을 뿐이다. 우리들은 모두 각자의 시간을 산다.

무릎을 바닥에 두고 엉덩이를 높인채 몸의 앞면을 열어내는 우스트라아사나를 하다보면 느린 나의 몸이 더 깊이 느껴진다. 더 열려야 하는 곳과 더 강해져야 하는 곳이 어디인지도 알게 되고, 더 가고 싶은 마음과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더욱 또렷하게 만나게 된다. 후굴 동작이 수월한 이들이 만나는 풍경과 후굴 동작이 수월하지 못한 내가 만나는 풍경이 분명 다르겠지,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들이 모두들 자신만의 언어를 갖게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멀리까지 가고 싶은데 여전히 여기라는 사실에 늦어버린 것 같다는 마음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끝난 것이 아니라면 늦은 일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하면 된다. 지금 해야 한다.

느림보 나무는 알고 있을 것이다. 나무들에게도 각자의 속도가 있다는 것을. 아마 서운해하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조바심 내지 않아도 자신의 속도 안에서 자기답게 울창해지는 시기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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