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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Jun 13. 2018

열일곱번째 요가이야기

비라바드라사나 1



몸은 일종의 기억장치이다. 마음도 그렇다.




세상에는 자전거 타기와 같은, 잊은 것 같았지만 막상 다시 만나면 잊은 것이 아닌 일들이 많다. 과거에 좋아했던 어떤 노래의 가사를 귀가길 라디오에서 듣고는 혼자 중얼거리는 날도 있고, 그러다가 그 노래를 함께 들었던 친구와 친구의 작은 방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 무렵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의 작은 조각들이 깨진 채로 내 안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생각보다 나의 내부는 꽤 깊은 것인지 아래를 잠깐 스윽 돌아볼 때에는 보이지도 않던 것들이 멈추어 가만히 오래 들여다보면 먼 곳에서부터 하나씩 바깥으로 나온다.

우리 몸은 일종의 기억장치이다. 마주잡았던 손을 기억하고 어린시절에 자전거에 올라타 페달을 구르던 것도 새겨져 있다. 먹었던 음식도 만났던 공기도, 기억력이 좋지 못한 나만 잊었을 뿐 내 몸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몸의 기억은 어떤 움직임 안에서 머무르며 호흡할 때 나를 찾아오곤 한다. 이를테면 자전거 위에서 반복적으로 발을 구를 때 깨닫는 것이나 요가 매트위에서 동작을 할 때 사용되는 근육들, 혹은 나에게서 나는 체취같은 것들. 그리고 마음 역시 걸음을 멈추어야 보이는 것이 있다. 마음이 한 장소를 서성거릴 때여야 스스로 기억해내는 마음의 근육이 있다.

거짓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에게 하는 거짓말도 내가 누군가에게 하는 거짓말도 모두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도 거짓말을 해야할만큼 애를 쓰며 살고 싶지는 않은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런 내가 나에게는 가끔, 거짓말을 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만들어보지도 않았던 움직임을 만들면서 처음부터 잘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고, 아직 익숙하지 않은 풍경에서 빨리 중심을 잡았으면 하고 소망하기도 한다.

재즈를 좋아해서 스윙댄스를 추기 시작한 것도 벌써 십년 전. 대학생이었던 나는 춤을 추러 바에 가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 두려워졌었다. 그 무렵의 나는 매번 그랬다.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일을 해내기 위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절. 그런 생각이 하고 싶은 일들보다 훨씬 중요했던 때. 그래서 나는 도망을 쳤다. “너무 사랑해서 떠날게.” 라는 말은 드라마 속 옛애인들만 하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너무 사랑하게되어 두려워질 때마다, 인생이 이대로 흔들리다가 문득 깨달으니 나락에 있으면 어쩌나 걱정하며 도망을 쳤다.

지금 생각은 물론, '도망치지 않았다면 더 흔들흔들거리며 춤을 잘 추게 되었겠지.' 이다. 대학원생이 되어 다시 추기 시작했지만 저녁에는 요가 수업을 하느라 마음껏 춤을 출 수는 없었고, 긴 여행을 준비하고 여행을 하고 돌아와 적응하는 동안에도 당연히 자주 갈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요즘 다시 연습을 시작한 나는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는 나에게 자꾸만 거짓말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매트로 돌아와 비라바드라사나 1을 만나면 다시 정직한 나, 거짓말을 기대하지 않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요가 수련을 하고 또 수업을 하면서 아마 아도무카스바나사나 다음으로 자주 만난 동작이 비라바드라사나 1 아닐까? 앞쪽의 있는 발에서 올라오는 힘과 뒷쪽에 있는 발에서 올라오는 힘이 골반에서 만나고 그 힘은 아랫배에서 윗등과 가슴으로 전달된다. 어깨를 부드럽게 만들며 팔을 하늘쪽으로 펼쳐내고 나면, 정직하게 몸이 하는 이야기들이 들린다. 어제의 움직임으로 오늘 뒷쪽 다리가 조금 타이트하게 느껴지면, 그렇구나, 하며 지나간다. 그렇게 마음들을 지나보낸다. 내부에 기억이 있다면 꺼내고, 아직 기억이 없거나 너무 멀어진 기억이라면 낯선 것이 당연하지, 그래서 쉽지 않은 것이 또 당연하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요가가 나에게 준 선물.

그 선물을 품에 안고 잠시 머무르며 동작 안에서 호흡한다. 몸에게 거짓말을 요구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기억하도록 두고, 기억나지 않는 것은 멀어지게 두고, 첫번째 기억이라면 서투르다는 말을 소중하게 쓰다듬는다.

내 두 손이 기억하는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을 애써 밀어내지 않고, 어색하게 잡아버린 새로운 손을 애써 익숙하게 잡지도 않는다. 내부에 쌓인 기억을 존중하고 정직하게 몸과 마음을 사용한다.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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