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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Jun 27. 2018

열아홉번째 요가이야기

살람바 사르반가아사나



과정의 시간


인생은 언제나 과정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의 결과로 오늘이 있지만 오늘도 다음 언젠가 만날 날의 과정이 될 것이 분명하므로 온전히 결과로만 존재하는 일 같은 것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떤 결과물을 내고, 그 결과물을 향유하는 것조차 때로는 다음에 일어날 일의 과정이 되는 것을 여러 번, 다름 아닌 내 인생에서 목격한 다음 나를 찾아온 다음의 마음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 찾아온 다음 나는 조금 변했다. 요즘도 때때로 서운하고 문득 행복하고 가끔 혼자 울기도 하고 자주 뜨겁게 사랑하지만 그렇게 일어나는 감정과 사건들이 어딘가로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다고 여기게 된다. 예전처럼 저 아래 깊숙한 곳에서 오래 헤매게 되지도, 너무 위로 높이 올라간 감정을 담고 땅에 발이 닿지 않아 허우적 거리는 것 같은 불안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아주, 고맙다고 생각한다. 과정 안에서 모든 것을 빼곡하게 느끼고 있지만 감정이 나 자신이 되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생겨난 것 같다. 그러다가도 문득 문득 오락가락 하는 것은 살아가는 동안 살아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 생각하며 지낸다.

어떤 루틴을 만들고 그 루틴을 성실하게 지켜가면서 안정감을 찾는 나란 사람이 있다. 삶에 새로운 무언가가 들어오면 루틴은 변할 수밖에 없고, 그럼 그 때에 적절한 루틴을 만드는 동안 허우적거리며 마음을 가눈다. 그 시기 동안에는 마음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진다. 힘이 생기기까지의 마음은 힘이 생겨나 마음 근육이 이리저리 가볍게 움직일 때와는 확실히 다르다. 무겁게 걸음을 놓고, 거기에 아직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은 것 같고, 딱딱하게 굳어져버려서 부드러워지는 일은 아득하게 멀리에 있다. 몸에 힘이 생겨나는데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마음도 이리저리 움직여보며 기다리면 힘이 생겨나는데, 힘이 생겨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자유롭고 강해진다.

살람바사르방가아사나는 수련 중에 자주 만나는 동작이지만 그 날의 몸 상태에 따라서 가벼움의 정도가 매번 달라서 재미있는 동작이다. 힘이 없는 몸 역시 무겁다. 몸의 뒷편에서 들어 올려주는 다리 뒷면의 근육의 힘이 없으면 뒤에서 잡아주어야만 하는 몸을 땅과 가까운 쪽에서 모두 지탱하게 되고, 그러면 머리가 무거워지고 목이 아프게 된다. 어딘가에서 하지 않은 일은 결국 몸의 다른 어딘가에서 해야만 모양이 유지되기 때문에 어딘가의 약함이 어느 곳의 불편함으로 전달되고 마는 것이다. 머리가 무거워질 때면 숨을 고르고 다리에서 힘을 조금 더 만들어 본다. 다리의 근육들이 제 할일을 하고 등의 근육들도 뒤로 모아 사용하게 되면 어느새 머리가 산뜻해진다. 무겁다 여긴 순간도 가볍다 느낀 찰나도 과정처럼 지나가고, 지나간 자리에는 움직이기 전보다 부드러워진 감각과 조금은 더 단단해진 느낌이 채워진다. 어쨌든 계속해서 살아갈텐데 그날 따라 무겁거나 그날 따라 가벼워도 움직이지 않은 것 보다는 결과적으로 좋고, 마음 역시 그날따라 어둡거나 그날따라 밝아도 그 마음에 방점을 찍지 않고 흘려보내고 나면 어떤 방식으로든 내부에 흔적을 남긴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들은 밀물과 썰물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무겁다, 느낄 때면 생각한다. 힘이 없는 것은 무겁다. 그리고 힘을 만드는 것은 나 자신. 몸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다. 소망했으나 오늘 되지 않았던 어떤 일은 내일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오늘 내가 열심히 했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그냥 오늘을 살면 되는 것이다. 과정의 시간을 사는 사람에게는 결과도 결국 다음 삶의 과정이므로, 크게 상심할 필요가 없어진다. 오늘 몸이 무거우면 오늘 더 움직여보고, 마음이 무거우면 이리저리 마음을 비틀어본다. 완결되지 않음이라는 뜻의 과정이 아니라 과정 자체를 바라보는, 그것으로 충분한 과정의 시간.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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