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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Jul 11. 2018

스물한번째 요가이야기

바카아사나



나를 경험한다.

우리들은 누구나 성장하면서 이런저런 경험이 쌓인다. 넘어졌던 기억,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났던 기억, 넘어지고 나니 생각보다 별일이 아니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 기억. 수많은 경험을 안고 살아간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넘어졌던 기억이 꼭 어둡지도, 넘어지려다 중심을 잡았던 기억이 꼭 밝지도 않은 것이다. 어떤 넘어짐은 그 후에 두려움을 없애고 어떤 나아감은 계속 나아가야한다는 마음을 떠밀어 불안하게 만들기도 하고, 오래 울었던 어떤 기억은 내 안에서 지혜로 빛나기도 한다. 사람마다도 다르겠지만, 그보다 한 사람 안에서도 매번 다른 마음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우리들은 매 순간 달라지는 자신을 만나고 있는 것 같다.

코스타리카 여행 중에 친해진 카타리나라는 친구는 서핑과 요가를 즐기는 스웨덴 사람이었다. 일년 중 6개월은 리조트에서 일하고 6개월은 여행을 한다고 했다. 요가강사가 되고 싶어 공부를 했고, 과정이 막 끝났다는 이야기도 덧붙이며 수줍게 웃었다. 우리가 만난 것은 시월의 어느 날 이었고 시월은 그녀의 이번 휴가가 시작되는 시기였는데, 그녀는 산타테레사 해변에 오자마자 서핑을 하다가 갈비뼈에 부상을 입었다. 숨도 크게 쉬어지지 않았고, 서핑은 물론 요가도 하기 어려운 상황. 그런데 그녀는 그 와중에도 바다에 나가 서퍼들을 보고, 해변에서 아침 조깅을 하고, 얕은 물에 들어가고, 내가 요가 수련 하는 동안 해먹에 누워 그 모습을 지켜보며 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읽고, 오후가 되면 비건 음식점에 함께 가서 신나게 음식을 먹었다. 괜찮은 것인지 물으면 그게 오히려 괜찮지 않은 부분을 건드릴까봐 나는 그 말을 삼키고 카타리나와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진심을 담아 그녀에게 물었다. “괜찮아? 서핑도, 요가도, 벌써 삼주째 못해서 속상할 것 같아. 계속 생각했어.”

“예슬, 난 경험하고 있어. 아픈 몸을, 그리고 회복할 수 있는 나를. 그러니까 괜찮아.”

카타리나는 마음의 바탕이 참 넓구나,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그리고 넘어진 경험이 지혜가 되는 것은 내가 선택하는 마음이, 그 길을 만드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이제 막 요가강사가 된 카타리나에게 내가 말했다.

“있지, 카타리나. 넌 이제 요가강사가 되었잖아. 그러니까 이제 너의 수업에 누군가 그곳이 아픈 사람이 오면 너는 그 누구보다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야. 나는 어릴 때 배가 자주 아팠고, 골반도 불편했고, 한쪽 어깨도 많이 아팠어. 그리고 과체중이었고, 몸이 많이 아팠던 만큼 마음도 잘 멍이 들었어. 근데 요가강사를 하며 참 좋았던 것은, 아팠던 그 시간 덕분에 내 말에 힘이 생긴다는 거였어. 나는 당신의 아픔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요. 그러나 똑같은 아픔은 아니어도 나도 그 곳이 아팠던 적이 있어요. 그 때 내가 했던 방법이 무엇이냐면- 하고 말을 시작할 수 있더라. 너는 정말 훌륭한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거야. 넌 경험을 지혜로 만드는 방법을 잘 알고 있으니까.”

위로를 잘 할 줄 몰라서 결국은 저런 말 정도밖에 못했지만 카타리나가 웃었다. 아주 활짝.

바카아사나만 하면 항상 데굴데굴 굴러가던 내가 있었다. 너무 해내고 싶은데 자꾸만 앞으로 굴러가서 잠들기 전에 매일매일 연습을 했었다. 두려울 때마다, 힘이 약하다 느낄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움추리는 오랜 기질이 나를 공으로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고개를 들어보자, 시선을 앞에 두고, 나를 믿고, 숨을 쉬자. 다독이며 매일매일 해보았다. 어느날 바카아사나를 하는데 공이 되지 않는 나를 만나고 나니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또 하나 늘어난 기분에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지금 서툴게 하는 동작들도 그런 경험안에 있겠지 하고 때로 생각할 때면 내 직업이 아주 멋있어 보여서 미소짓게 된다.

더 가야할까, 멈추는 것이 좋을까, 한 숨 쉬었다가 가면 좋을까, 이런저런 결정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상상할 때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경험에 기반하여 생각의 키를 높인다. 그러나 경험에 기반한다는 것이 때로는 스스로를 제한하게 될 때도 있고, 두려움을 이끌어 올 때도 있다. 내가 아는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 하고 생각하지만 내가 아는 나는 그저 내가 경험한 나일 뿐이고, 내가 아직 모르는 내 모습은 언제나 아는 모습 너머에 존재한다. 그러니 매 순간, 딱 그 순간 느껴지는 나를 경험한다.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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