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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Aug 08. 2018

스물네번째 요가이야기

칸다아사나



우선은 흉내를 내어 본다. 그리고는 매일의 풍경을 만난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는 아사나가 있다. 아니 있다, 는 말로는 부족하게 나에게는 여전히 아주 많다. 익숙한 방식이 아닌 움직임을 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안되겠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그러니 연습하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인가'하는 생각이 올라올 때도 있다. 나도 안다. 그런 생각은 어리석다. 그러나 그렇게 어리석은 생각을 문득문득 하곤 하는 내가 분명히 있다.

한국어 수업을 하던 교실에서 내 마음을 자꾸만 붙잡는 학생이 있었다. 시험을 보면 분명 많은 것을 알텐데 싶지만 막상 수업에서 발화 연습을 할 때면 입을 떼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곰곰 곱씹어보니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면 그제서야 한 마디를 정확하게 뱉어내던 학생이었다. 그냥 한 번 흉내내어 보는 것 만으로도 언어는 실력이 늘어가는 것인데 완벽하지 않은 문장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에 그 학생의 시간은 누구보다 더디게 흘러갔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을 또 한 명 알고 있다. 요가 매트 위에서도 만났고,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배우는 시간에도 만났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

처음이 없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두번째와 세번째가 이어지려면 우선 우리들은 처음을 만나야 하는데, 처음에 대해 어떤 결벽을 갖거나 처음에 했던 실패로 앞으로 찾아올 나머지 시간을 내 마음대로 규정해버리고 나면 내 마음이 내 마음에 의해서 다친다. 세상에 나온 아이가 모국어, 즉 태어나 처음 만나는, 자기 민족의 언어를 배울 때 조차도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들의 기억에서는 멀어져 별일 아닌 것 같지만 지금 내가 주로 사용하는 언어가 이렇게 익숙해지기까지 우리는 많은 연습을 하였고, 많은 소통의 실패를 경험하였고, 많은 고민을 하였다. 아이가 태어나 엄마라는 말을 하기 까지, 그 말을 따라해보라고 강권하는 한 생명체의 모습을 얼마나 자주 만났을까? 그냥 한 번만 따라해보라고, 어렵지 않다고, 엄마, 라고 한 번 말해 달라고,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우리들은 말한다. 엄마, 해봐, 아빠, 해봐, 이모, 라고 해봐. 어느 날 아이가 그 말을 하면 온 가족이 들떠서 손뼉을 친다. 아이는 그냥 그 발음을 한번 해보았을 뿐일지도 모르는데 모두가 기쁘다. 그러면 아이는 아직 말랑한 머리로 생각하지 않을까? 아, 내가 엄마, 라고 말하면 나에게 밥을 주는 저 사람이 저렇게 기뻐하는 구나, 그러니까 다시 한 번 엄마! 이렇게.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어느새 언어에 의미가 담긴다. 처음에는 흉내만 내었던 말들의 뜻을 알게 되고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몸의 언어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자꾸만 흉내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아, 이래서 이 동작을 해야하는 것이었구나 하고 알게 되는 날이 온다. 그 시간이 아주 먼 훗날 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매일매일 모국어를 되뇌듯, 엄마의 뜻을 모르며 엄마 를 되뇌듯 반복하다 보면 알게될 것이다.

지금은 모국어처럼 반복하여 익숙해진 동작들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동작들이 어렵고 낯설다. 만났어도 매번 낯선 느낌이 들 때면 꼭 외국어를 배우는 것 같다. 칸다아사나는 두 발을 몸통 쪽으로 당기며 발목을 뒤집고 배꼽과 가슴 방향으로 발 바깥쪽을 닿게 하는 동작인데 수업에서 이 동작을 만나면 이상한 좌절감이 든다. 사람 마다 다르겠지만 힘을 채우는 것보다 더 시간이 오래 걸리는 힘을 비우는 것이 가능해 져야 이 동작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이 동작을 만나면 열심히 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웃게되는데 그러니까 그냥 자주 해야만 되겠지 하는 마음이다.

우선을 흉내를 내어 본다. 여전히 잘 못하고 왜 해야하는지도 가끔 잘 모르겠는 동작들까지, 그 동작을 향해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중간중간의 풍경을 만나려고 한다. 동작이 어느 날 되어도 좋고, 계속해서 되지 않아도 그래도 뭐 어떤가? 나는 매일의 풍경을 만났으니까 괜찮고, 흉내를 내어보며 웃었으니 괜찮고, 그러는 동안 더 나다워졌으니 괜찮다.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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