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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Sep 19. 2018

서른번째 요가이야기

마리챠아사나




주변을 잘 둘러보면서 사부작

두려워질 때가 있다. 목적지라고 생각한 곳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해서 고개를 돌리니 소중했던 사람들이 다 떠나간 후 일까봐. 겨우 도착은 하였지만 텅 빈채로 도착지에 서 있을까봐. 나는 여전히 그런 것들이 문득 문득 두렵다. 이십대 내내 나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도착하지 못할까봐 걱정하고, 도착하였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혼자일까봐 걱정하고, 어서 도착하려는 성급한 마음에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상처를 입히며 그 길을 걸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더디게 걸었다. 느린 걸음으로 수도 없이 두리번거리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다. 그런 나를 부족하다 생각하며 속상했던 적도 있지만 드디어 나는 그런 나의 기질 안에서 나의 좋은 점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 그렇게 천천히 걸어보는 것이다. 목적지에 시선을 온통 다 빼앗기지 않고 주변도 잘 둘러보면서 사부작 사부작.

어깨를 다친 적이 있고, 요가를 시작한 시기에는 아주 많이 안으로 말린 어깨를 가졌던 나는 여전히 어깨를 활짝 열어두어야 하는 동작이나 회전해야하는 동작, 트위스트 동작들이 어렵다. 마리챠아사나를 만날 때마다 늘 버거웠다. 어깨관절을 부드럽게 만들기만 하면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이런 저런 움직임으로 부드럽게 만들어 두어도 동작은 매번 나를 숨차게 하였다. 요가아사나는 너무도 정직하고 단호하다. 힘을 채워야하는 곳에 힘을 잘 채우고, 비워야하는 곳에 잘 비워야만 동작이 제대로 만들어지고 움직임 안에서 숨을 부드럽게 쉴 수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안다. 내가 정말 그 동작을 음미하고 있는지, 흉내만 내고 있는지. 다른 사람은 짐작만 할 뿐 정확하게는 몰라도 나는 안다.

어깨 관절을 부드럽게 만들어야하는 동작이기는 하지만 어깨를 유연하게 하는 것은 가슴과 등, 겨드랑이 안쪽과 상체 전부, 혹은 바닥에 닿아있는 다리의 면에서부터 올라오는 힘이다. 하체의 힘을 잘 채우고, 골반을 잘 안아주고, 복부 중심에도 힘을 채워 척추의 움직임을 조절한다. 겨드랑이 안쪽을 끌어내려 몸 옆선의 힘도 살펴보고 나면 그제야 어깨 관절에 공간이 생기면서 부드러워진다. 그런 다음에는 몸의 뒷면 힘까지 인지하며 동작을 하게 되고, 그제서야 나는 부드럽게 숨을 쉴 수 있다. 여전히 마리챠아사나 D는 어렵지만 그래도 조금씩 동작과 친해지고 있다.

여행길에서 한참 기대했던 목적지에 도착하여 감동을 느끼는 날도 있지만 가는 길에 만난 풍경에서 더 큰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니까 가는 길에서, 목적지 주변에서.

코스타리카 산타테레사 해변에 한달간 머무는 동안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해변의 끝자락이 있었다. 저 끝에 도착하면 풍경이 어떻게 달라질까? 저기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길이 끝나는 곳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내내 궁금해하다가 떠나기 삼일 전 용기를 내어 걸어보았다. 아는 길이 끝나고 모르는 길에 들어서서 만나는 풍경들은 목적지를 잊게 만들었다. 거리에는 말도 걷고 닭들도 걷고 개도 뛰어다니고 나도 함께 걷는데 그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기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목적지 같은 것은 다 잊어버렸었다. 향하는 곳은 있었지만 그 길에서 나는 매순간 풍경으로 존재하였는데 그러는 동안 알게 되었다. 지도를 내려놓고 걷는 길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이 있다는 것을. 조금 늦게 도착하게 되더라도 많이 두리번 거리며 걷는 나로 지내는 일도 꽤 괜찮은 일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길의 끝에 도착하여 또 하나 알게 되었다. 하나의 길이 끝나고 나면 또 다른 길이 거기에 놓여있다는 것. 목적지 다음에는 다음 목적지가 놓이게 된다는 것. 그러니까,

그래, 다시 천천히 걷는다. 목적지에 시선을 온통 다 빼앗기지 않고 주변도 잘 둘러보면서 사부작 사부작.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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