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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Sep 26. 2018

서른한번째 요가이야기

욷티타 트리코나아사나


 안다, 라는 위험한 말.

알아보는 사람만 알게 되는 것 아닐까. 모르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 아닐까. 그러니까 지금 알게된 것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 아닐까.

자주 만나는 풍경에 대해, 줄곧 함께하는 사람에 대해, 인생에서 사라진 적이 없는 어떤 사람이나 관계에 대해서도 그렇고, 한번도 만나본 적 없어서 제대로 상상하지 못하는 어떤 장소에 대해서도 그렇고, 살아보지 못한 어떤 인생에 대해서도, 지금 살고 있는 인생에 대해서도, 완전히 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안다, 라고 어느 날에는 쉽게 말해버리지만 우리가 정말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나는 내 마음도 가끔 잘 알 수가 없는데 타인의 마음을 혹은 우리 관계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같은 것은 당연히 알 수가 없다. 자주 만나는 사람일수록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그를 안다고 생각하곤 하지만 그러니까 완전히 알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다. 그 뱃속에서 나왔어도 나는 여전히 엄마를 잘 모르겠고, 엄마 역시 자신의 뱃속에서 내가 나왔지만 내가 도무지 왜 이런 아이로 지내고 있는지 모르실 테니까. 그러니까 우리들은 누구도 무엇도 완전히 아는 것이 없다.

'안다'라는 말에 대해서 처음으로 오래 생각하였던 날이 기억난다. 이제 막 온도가 떨어져 팔을 쓸며 옷을 여미던 어느 가을날이었고, 비가 내리기 시작해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던 중간고사를 마친 어둑어둑한 낮시간. 그 날은 드물게 아르바이트가 없던 어느 금요일 오후였다. 04학번인 나는 학교를 들락날락 하다가 뒤늦게 마음을 잡아 06학번 동생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했는데 그래서 그 무렵은 입학 후 이년도 더 지났지만 여전히 일학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장 친하게 지냈던, 후배이지만 제일 좋은 친구, 하마가 어느 날 작은 교실에서 하는 강연을 함께 듣자고 했다. 집에 가고 싶었는데 하마는 "언니의 휴대전화 화면에 있는 그 책, 그 책을 쓰신 분이 오신대요." 라고 말했다. 그 길로 강의실에 들어가 노트를 꺼내고 쿵쾅거리는 마음을 쓰다듬으며 기다렸다. 문이 열리자 차가운 공기와 함께 좋아하는 소설가 김연수씨가 강의실로 들어오셨다. 이야기를 하시는 내내 많은 말들을 노트하였다. 그리고 어떤 말 하나는 노트한 부분을 보지 않아도 여전히 선명하게 생각난다.

"나는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는 그래서 쓴다, 라고 이야기하였다. 그 때 가장 알고 싶었던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잘 알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했다. 나는 '나'도 모르니까 당연히 '당신'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책을 읽고, 공연을 보고, 음악을 듣고, 그리고 요가를 하였다. 우선은 내가 가진 몸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왜 이런 형태를 갖고 있는 것인지 마음이 아픈 날에는 왜 몸도 아픈 것인지 몸에 상처가 나면 왜 마음도 비틀거리는지 같은 것들이 내내 궁금했다.

여전히 잘 모르지만 당시보다는 잘 알고 있다. 갖고 있다고 여긴 것을 잠시 놓고 나면 그제서야 더 알게 되는 것이 있어서 때론 무언가를 잃는 일도 꽤 괜찮은 순간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매트 위에서 안다, 라는 생각이 올라오면 이제 나는 손을 놓아보거나 발을 떼어 보거나 고개를 돌려본다. 안다, 라는 생각에 흠집을 내고 다시 차분하게 살펴보기 위해서. 완전히 아는 것은 역시 세상에 없다고 내게 이야기해주기 위해서.

아도무카스바나아사나 못지 않게 자주 만나온 트리코나아사나를 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드위하스타, 바닥이나 발목에 닿아있던 손을 놓고 앞으로 뻗쳐 본다. 그제서야 느껴지는 힘들, 살짝 놓아보니 깨닫게 되는 나를, 공간을 만들고 나니 살피게 되는 작은 것들을 만난다. 발바닥은 골고루 지면에 닿아있는지, 그래서 하체 구석구석으로 힘이 채워지고 있는지 문득 살펴보게 된다. 발에서 밀어낸 힘이 허벅지를 타고 올라와 아랫배로 잘 연결되고 있는지 그 힘은 다시 몸의 옆선으로 잘 연결되어 어깨와 목을 부드럽게 사용하도록 돕고 있었는지가 분명해진다. 어느 날에는 제법 그럴 듯하게 아는 사람 같고, 어느 날에는 부족하다. 아주 같은 날은 없다.

경험한 세계에 기반하여 알고, 아는 만큼 생각한다. 그러니까 안다, 는 말은 어쩌면 무서운 말인 것 같다. 가볍게 안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쉽게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세계에서 내가 경험한 조각은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한다.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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