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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Oct 17. 2018

서른네번째 요가이야기

비스바미트라아사나



각자의 길을 경쾌하게 걷기


길을 만든 것은 사람이다. 가끔 하나인 것처럼 보이는 어떤 길은 누군가가 하나의 길을 만든 다음 더이상 아무도 만들지 않아서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산으로 가는 교통 수단 중에 가장 좋아하는 탈 것은 기차이다. 더이상 빨라지지도 갑자기 느려지지도 않는 속도로 계속해서 달리다가 사람들을 태우거나 내려주고 다시 일정한 리듬으로 달려가는 기차에 타고 있을 때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일정한 리듬을 만들고 그 안에서 반복적으로 시간 쌓는 일을 몹시 좋아하는 성격에 아주 적당한 교통 수단이라 부산에 갈 때 뿐만 아니라 마추픽추에서 쿠스코로 돌아오는 길에도, 델리에서 리시케시로 향하는 길에도 나는 기차를 선택했었다.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음악을 듣거나 아니면 텅 비운 채로 바깥을 보고만 있으면 어딘가에 도착하는 감각이 매우 좋다. 그렇게 도착한 장소는 비행기로 난데없이 먼 곳에 도착해버렸거나 오래 걸어 무거워진 다리를 이끌고 도착한 곳보다 더 다정한 첫인상으로 다가온다.

친구의 결혼식이 있어서 오랜만에 가는 부산행이었는데 갈 때에는 전날 미리 기차로 내려가고 돌아오는 길에는 친구가 결혼식 하객을 위해 준비한 버스에 올라탔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서 함께 가는 친구들과 기지개를 켜기도 하고 버스에서 늘어지게 자다가 일어나 어둑한 버스 안에서 팟캐스트를 듣기도 하고, 준비해주신 간식을 먹기도 하였더니 꽤 즐거운 버스 여행이 되었다. 며칠 후 외국에서 한국에 온 친구는 우리집에서 하루를 묵고 집이 있는 부산으로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다.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하늘에도 길이 있고, 산을 지나는 길도 있고, 레일 위의 길도 있다.

그렇다면 그 중 부족한 길이 있을까? 나에게 부족한 마음으로 다가오는 어떤 길은 누군가에게는 아주 귀한 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가나 저렇게 가나 도착할테고 우리들은 모두 조금은 다른 길의 기억을 안고 그 곳에 서있을 뿐이다.

비스바미트라아사나를 향해 가는 가장 좋은 길은 손의 기반을 잘 펼쳐서 사용하는 일과 허벅지 안쪽의 근육을 부드럽게 만드는 일, 바닥에 닿아있는 발을 견고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기반에서 시작하는 힘과 그 연결에만 늘 마음을 두고 동작을 만났었다. 자주 엉덩이가 무겁게 느껴졌고 몸의 옆선에는 힘이 잘 채워지지 않았었는데 비스바미트라아사나를 하려던 것이 아니었던 어느 날, 다른 곳을 향해 가다가 문득 해보고나니 무겁게 느껴진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그 날은 겨드랑이 안쪽에 공간을 충분히 열어둔 채 시간을 오래 보냈고, 허벅지의 안쪽과 복부의 옆면에도 빈칸을 만드는 기분으로 한참동안 몸을 펼쳐두었었다. 문을 열고 오래 환기를 시키는 기분으로. 그렇게 열어둔 자리에 힘이 차오르자 그제서야 동작은 조금 더 가벼워졌다. 아, 딱딱한 곳에는 부드러운 힘이 채워지기 어려운데 그걸 생각하지 못했구나 싶었다. 요가 동작들이 재미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다르게 다가가면 다른 것들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갈래의 길에서 그 길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을 각자 자기답게 만난다.

그 길도 이 길도 어쩌면 누군가의 다른 길도 있다. 이쪽 길로도 걸어보고 저쪽 길로도 걸어보면서, 길을 충분히 만나고는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 “여기에 향기가 좋은 길이 있어요. 그런데 저 길에는 멋진 산이 있고요, 또 저 쪽의 길에는 푸른 바다가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어느 길로 걸을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에는 나 자신. 즐겁게 걷되 다른 아름다운 길이 도처에 있음을 잊지 않는다.

같은 길을 같은 속도로 걷지 않아도 괜찮다. 가끔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을지도 모르고 나와 다른 길을 가는 이들이 그들에게 꼭 맞는 멋진 풍경을 만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끔 만나 각자가 만난 좋은 풍경을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넓고 깊게 걸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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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수행디피카에,
‘땅이 너무 딱딱하다면 어떤 생명이 거기에서 자랄 수 있겠는가? 만일 몸이 너무 뻣뻣하고 마음이 지나치게 경직되었다면 어떤 삶이 가능하겠는가?’
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다른 곳을 향해가다가 문득 그 접근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헹가 선생님의 말씀 덕분입니다.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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