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들 Nov 28. 2018

마흔번째 요가이야기

프라사리타 파도타나아사나


길은, 처음에는 길이 아니었다.

없었던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길을 무심하게 걸을 때면 그 길은 당연히 그 자리에 있었고, 앞으로도 거기에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곳에서 더 오래전부터 살아왔던 사람들은 길이 없던 그 날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까?

터널을 빠져나오자 그리운 동네가 나타났다. 분당이라는 신도시에서 어린 시절을 내내 보냈다. 아직 도시의 모습을 갖추기 전부터 살기 시작했고, 사는 동안 지하철도 개통되고 유명 커피 체인점도 들어오고 도넛츠 가게도 생기고 영화관도 생겼었다. 그러나 스무살 이후의 삶은 서울에서 지나보내고 있어서 아주 오랜만에 그 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산의 뒷편에 있는 한 동네와 오래 살았던 동네를 연결하는 길은 내 기억으로는 차로도 삼십분 정도 둥글게 돌아가는 먼 길 뿐이었는데, 그 곳에서 멀어져 있는 동안 터널이 하나 생겨났고, 터널을 지나자 금세 두 동네가 하나의 길로 연결되었다. 기억한다. 길이 없던 그 때의 동네를. 몸을 사용하여 남긴 내부의 기억은 꽤 힘이 세고 꾸준하다. 걷고, 동네의 테니스장에서 테니스를 치고, 자전거를 타기도 하며 쌓은 동네의 기억들. 아주 작았던 발로 길들을 여러 번 오가는 동안 동네에는 새로운 길이 생겨나기도 하고, 희미한 길들이 선명해지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생기고 시간이 흘러 걷는이가 많아지면 어느새 모두의 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목구멍에 있는 숨의 길목이 열려있고, 척추라는 숨의 길이 정돈되어 있을 때에는 숨은 부드럽고 깊어진다. 동작에 다가가는 순서가 달라지거나 평소보다 오래 머무를 때에는 숨의 길이 좁아지는 것 같을 때도 있고 구불구불한 길로 숨이 잘 못지나다니는 것만 같을 때도 있다. 매트 위에서 숨의 길에 대한 생각을 한다. 열려있는 것일까? 길은 만들어졌나? 청소는 잘 되어있나? 평소보다 더 긴 호흡으로 더 많이 반복하며 파도타나아사나를, 여러가지 손 모양으로 바꾸어가며 한참동안 왔다갔다하며 머무른다. 숨의 길목을 잘 열어두고, 척추를 위와 아래로 움직이는 동안 그러니까 여러가지 옷으로 갈아입으며 반복해서 길을 걷는 동안 길은 조금 더 명료해지고 코로 들어온 숨은 조금 더 먼 곳, 발끝까지 전달된다. 첫 움직임을 시작할 때에는 그리 깊지 못했던 호흡이 동작을 반복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조금씩 깊어진다.

처음부터 깊고 고요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지만 처음은 확실히 처음 이후와 다르다. 처음이 마음같지 않다는 이유로 걷는 것을 멈추었다면 걷는 동안 볼 수 있는 무수한 풍경들도 보지 못했을 테고 훤하게 길이 넓어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시작하는지 같은 것은 어쩌면 하나도 중요하지가 않다. 시작한 다음 어떻게 걷고 있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으며 무엇을 중심에 두고 시간을 보내는지가 중요하다. 그러니까 어떤 길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마음에 꽉 차는 시작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우선 시작부터 해보기로 한 다음 삶에 새로운 풍경이 만들어졌다. 서투르게 마련인 처음이니까 조금 뭉툭한 시작을 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시작한 다음 아직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길을 따뜻하고 환한 표정으로 여러번 오가는 것. 바라고 있는 빛깔의 마음을 계속해서 꺼내드는 일이다. 이제, 목적지로의 길은 조금 더 밝고 선명해졌다.

지금 살고 있는 삶의 길이 만들어지기 전의 나를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도 나를 위해, 내가 걸어갈 길을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

-
좋아하는 책인 월든 속, 다음 문장에서 생각의 길이 열렸음을 밝힙니다.
한 걸음이 지상에 길을 만들지 못하는 것처럼, 한 번의 생각은 마음에 길을 내지 못할 것이다. 물질적으로 뚜렷한 길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걷고 또 걷는다. 정신적으로 선명한 길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기를 바라는 그러한 종류의 생각을 계속 해야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작가의 이전글 내일 할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