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물걸레 청소기

by 버들



나의 생각하는 소비생활 : <사고재비>


02. 물걸레 청소기


어린 시절, 엄마에게 혼나거나 오빠와 다투는 날이면 어김없이 내 책상은 반질반질 광이 났다.
어떤 연유로 청소를 택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감정이 복잡해지면 책상 서랍을 하나하나 꺼내 붓고 청소를 시작해서 버릴 것과 쓸 것을 구분 지어 다시 차곡 차곡 담는 동안 마음도 함께 정리되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었나 보다.


성인이 되어서도 어릴 적 버릇은 남아서 마음에 근심이 깊어지는 날이면 집안 곳곳을 공들여 닦아낸다. 깊숙이 담아 두었던 근심을 지워내듯 쓰지도 않으면서 끼고 살던 물건을 과감히 버리기도 하는데 청소가 끝나고 나면 형태조차 없는 이 감정이라는 녀석에 홀려 눈 가린 채 끌려다녔던 불과 몇 시간 전 내 모습이 허탈할 만큼 홀가분해지곤 한다.


머리가 복잡해지거나 우울한 날이면 가만히 누워 암울한 기운이 마음의 방을 갉아먹는 것을 지켜본다. 그 기운이 날 삼키다 못해 내 손끝이 투명해지려 하면 그제서야 두려워진 마음이 청소에 시동을 거는 것이다. 우울, 불안, 슬픈 마음이 나를 잠식하게 둬서는 안된다고 주문을 외우며 버리고 닦고 털어낸다.


최근 구입한 물걸레 청소기는 내 평정심에 이렇게나 중요한 청소라는 행위에 박차를 가해 주는 신박한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당기듯 움직여서 창문 청소를 하듯 뽀득뽀득 소리가 나게 바닥을 닦은 뒤 간편한 작동법만으로 뒤처리도 가능해서 청소기만으로는 아쉽고 무릎관절 걱정에 쭈그려 닦는 것은 걱정됐던 바닥 청소의 마무리로 그만인 것이다.


슥슥 내 쪽으로 밀어 당겨가며 바닥을 닦을 때면 마음 안의 걱정도 바닥에 툭 꺼내어두고 물걸레 청소기로 먼지와 함께 닦는 상상을 하는데 이때 마음속 묵은 때 같은 근심이 고개를 내밀면 쓰레기봉투 끝을 묶기 전에 밀어 넣어 함께 버린다.


오늘도 말끔해진 집이 꼭 후련한 내 마음 같다고 여기며 커피를 내린다. 역시 청소는 미루지 말고 그때그때 해야 한다고 허리에 손을 짚고서 뿌듯해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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