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반려견 이동가방

by 버들




나의 생각하는 소비생활 : <사고재비>


03. 반려견 이동가방








믹스견 만댕이는(당시 민구의 이름) 강아지 카페 게시판에서 보름이 지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녀석이었다. 전공서적 몇 권이 흩어져 있는 침대 위에 재미를 상실한 눈을 하고 누워 있던 생후 5개월 즈음 민구의 모습과 눈빛에 반해서 그날 밤 만나러 간 뒤 다음날 바로 데리고 왔더랬다. 오랜 시간 반려동물 입양을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린 후, 혼자 사는 직장인 여성에겐 까다로울 수 밖에 없던 유기견 분양 절차에 좌절하던 나에게 와준 귀한 아이였다.
민구를 보고 온 다음날 점심시간 충무로의 한 동물 병원에 가서 가장 튼튼해 보이는 이동장을 사서 퇴근 후 민구를 데리고 왔는데 이 이동장을 바꾸지 않고 한 달에 한 번 본가를 왔다갔다 하며 7년째 사용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화려한 무늬에 질려 금세 바꿀 거라 생각했는데 이쯤 되니 나도 나의 취향을 잘 모르겠다.




계란 모양 집이 유행할 때도, 잠자리 분리를 위한 켄넬에도 들어가려고 하지 않던 녀석이 유독 이 이동장만큼은 들어가면 자발적으로 머리를 넣으며 빨리 닫으라고 재촉하는(듯 보이는)것이 아마도 이 안에 들어가서 몇 시간 얌전히 있으면 새로운 곳으로 가는 걸 아는 것 같다. (오래 키우면 주인을 닮는다는 말이 맞는 건지 민구의 성향이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호기심도 많고 새로운 것도 참 좋아한다.) 사는게 즐거운 똥꼬발랄한 녀석이 이동장안에만 들어가면 갑자기 진지해지니 기차 안에서 오며 가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민구는 의젓하고 얌전한 강아지의 표본과 같을 것이다.




우리에게 이런 오랜 사연이 있는 이동장이 최근 손잡이를 지탱하는 뚜껑 부분이 찢어져 버려서 충격이었다. 오래 쓰기도 했으니 바꿀 때도 됐다 싶어 검색을 해봤지만 이것만큼 마음에 드는 것을 찾지 못했고 손잡이 부분 외에 다른 곳은 아직도 낡은 곳 없이 쓸만해서 이동장 전체를 들 수 있는 끈 부분으로만 들고 다녔더랬다. 명절을 쇠고 민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길, 지하철에서 내려 조금 걷자 하고 처음 보는 골목을 거닐다 우연히 가죽 수선집을 발견했는데 왠지 나를 위해 그 자리에 잠시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필요한 시기에 내 눈에 띄어서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가죽공예 경험이 있어서 가죽용 실의 찰진 튼튼함에 대해 알고 있던 터라 가죽 수선집을 보자마자 ‘이거다!’싶은 생각에 어깨에 메고 있던 이동장을 가죽 장인님의 손에 맡겼고, 진지한 디자인 회의 끝에 15분 남짓 기다려 튼튼함으로 무장한 이동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심지어 수선 가격이 생각보다 저렴해서 사고재비 정신으로 곧바로 새로 사지 않은 것에 대해 스스로 칭찬할 수밖에. 물건과도 인연이 있다고 믿는 나는 이번 계기로 이 이동장과는 나뿐만 아니라 민구의 생과도 탄탄히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


민구의 첫 장거리 여행과 우리의 수많은 명절 기차여행을 기억하는, 아기 민구부터 중년 민구를 지켜보고 있는 이 이동장이 앞으로도 부디 건강하게 우리 삶의 여행에 오래오래 함께 하길 바란다. 그러려면 우선 나와 민구부터 우렁차게 건강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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