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텀블러

by 버들

나의 생각하는 소비생활 : <사고재비>

09. 텀블러




나에겐 저팔계의 바주카포만 한 텀블러(이하 바주카포)와 늘 가지고 다니는 휴대용 텀블러가 있다. 눈을 뜨면 기지개를 켜고 바로 하는 것이 전기포트에 물을 올리는 일. 펄펄 끓는 포트에 빨간 불이 사라지면 바주카포에 물을 붓고, 엄마가 손수 말리고 볶아 보내준 돼지감자를 넣어 고소하게 우러나길 기다린다. 책상 위에 두고 작은 찻잔에 김이 모락 모락 나는 물을 식혀서 홀짝이다 보면, 집에서 일하는 날이면 739ml 바주카포에 하루 2번씩 물을 채우곤 한다.



외출할 땐 같은 방법으로 휴대용 텀블러에 차를 만들어 나간다.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마시기 위해 텀블러의 70%을 뜨거운 물을 붓고 나머지 30%는 생수로 채우는 것. 지금 쓰는 것이 여태껏 써본 텀블러 중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얼마 전에 고무패킹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본사에 문의해서 그것만 재구매하기도 했다. 기본 중에 기본으로 깔끔하게 생겼고 귀가 시 호신용으로 옆구리에 끼고 다니면 든든할 정도로 강인함을 자랑한다.



위의 글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물을 꽤 마시는 편이다. 꿀꺽 꿀꺽 마시면 이뇨작용이 과하게 활발해지고 그렇게 마신 날엔 꼭 체한다. 물만 마셔도 체하다니.. 억울하지만 건강을 위해 끊임없이 홀짝이는 편을 택했다. 긍정적인 말을 주기적으로 들었던 물의 결정이 예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물을 마시는 일을 신성하게 여기게 되었다. 미지근한 물이 내 목을 타고 흘러내려가서, 내 몸 안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그것과 만나 좋은 기운을 구석구석 나눠주는 상상을 한다. 바쁜 틈에라도 이런 식으로 물을 마시다 보면 없다고 여겼던 여유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나를 둘러싼 하나하나를 정성껏 관찰하며 사는 삶, 재미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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