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민들레 문진

by 버들



나의 생각하는 소비생활 : <사고재비>

08. 민들레 문진




손바닥만한 민들레 문진을 처음 본건 이제는 기억이 흐릿한 한 가게에서였다. 그 공간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곳에 장식된 문진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그 작은 것의 온몸으로 받은 빛이 내 앞 가슴을 통과해 마음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사랑에 빠진 기분이었다.
분명 자잘하고 귀여운 것들이 파는 곳이었을 텐데 솜방망이같이 빼곡한 씨앗에 마음을 뺏겨 자주 문진을 보러 갔음에도 뭘 파는 가게였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당시에는 그 영롱하고 탐스러운 물건이 많이 비싸게 느껴져서 대신 사진을 찾아보거나 그걸로도 아쉬운 날엔 그 가게에 가서 문진을 들여다보며 언 마음을 녹이곤 했다.

그렇게 누군가의 민들레 문진으로 마음을 달래던 어느 날이었다. 성수의 한 문구점에서 본 파란 꽃송이가 들어간 문진이 내가 민들레 문진을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을 소환했고, 결국 해외 구매 대행으로 주문하게 되었다. 배송이 오래 걸린다길래 애써 잊은 듯 지내던 어느 날, 민들레 문진은 4월의 시작을 알리며 나에게 거짓말처럼 와주었다.




문진을 보고 있으면 고요함이 감도는 민들레의 가운데인 머리 부분이 나 자신, 솜덩이 같은 씨앗들이 나를 둘러싸고 떠다니는 생각처럼 여겨진다. 자연스레 지금 내 안에 일어나는 생각들과 나 사이에 공간이 생겨 명상하는 것처럼 마음이 고요해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마음이 고단하고 나를 지키는 일이 힘든 밤이면 내 강아지의 체온과 엄마가 보내준 참기름 냄새와 책상 위에 놓인 민들레 문진이 나를 지탱한다. 누군가에게는 불필요한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짙은 농도의 쓸모 있는 물건이 되어 나를 살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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