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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Feb 29. 2024

책이나 게임이나

취미부자 관찰일기


게임을 좋아하면
모두 좀비 같아 보였거든요?


 아보씨는 게임류를 다 좋아한다. 콘솔게임, 핸드폰게임, 보드게임 등 가릴 것 없이 열려있다. 옆에서 지켜보니 스토리가 있고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전제하에 시간을 많이 할애할수록 즐거움이 배가 되는 것 같다. 20대까지만 해도 게임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쾌쾌한 냄새가 자욱한 pc방에서 밤새도록 찌들어가는 폐인의 모습만 떠올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 그런 모습을 보였던 사람들은 인생의 즐거움을 아직 찾지 못해 더욱 게임 안으로 숨어 들어갔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그렇게 현실도피를 하는 모습을 무책임하다고 여기는 입장이었고. 그때는 나도 마음에 여유가 없었지(회상).



중독 성향이 없어도


 이 남자를 만나 옆에서 지켜보다 보니 게임을 향한 색안경이 벗겨졌다. 게임도 이렇게 다양한 매력을 가진 취미일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아보씨는 게임을 좋아하지만 게임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 게임 외에 책을 읽어야 하고 영화도 봐야 한다. 운동을 해야 하고 하고 NBA도 봐야 한다. 애플 TV+ 시리즈물 <세브란스:단절>처럼 (줄거리를 엄청 간단하게 말하자면, 회사 밖에서의 ‘나’와 회사 안에서의 ‘나‘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아보씨는 집에 오는 버스 안에서 회사에서 사용하던 뇌를 빼놓고 오는 사람이다. 노력이든 아니든 간에 집에 오면 온전히 휴식모드에 돌입한다. 취미가 많다 보니 정해진 휴식 시간 동안 그 취미 활동을 짜임새 있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일까 자연스레 게임에 있어서 중독증세를 보일 여유가 없는 것 같다. 유전적으로 중독 성향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시리즈물을 시작하면 그날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아보씨(한 편만 보고 다른 취미를 해야 하기도 하지만, 재밌어도 한 편씩 아껴보는 타입)와 시리즈물을 같이 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책이나 게임이나


나와는 다른 아보씨의 취미 활동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 계기가 있었다. 아보씨가 좋아하는 게임 중 하스스톤이라는 핸드폰 카드게임이 있다. 먹는 속도가 빠른 아보씨가 식사를 마치고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는데, 느릿느릿 밥을 먹던 내 눈에 그게 보기 싫어서 한소리를 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아보씨가 그랬다. 내가 책을 읽고 있어도 보기 싫었을 거냐고. 자기한테는 핸드폰 게임이나 책을 읽는 거나 동등한 유희거리라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정말 책을 꺼내서 읽고 있었으면 별 말 안 했을 것 같은데, 그 두 종류가 이 사람에겐 같은 농도라니. 생각해 보면 같은 농도가 아닐 이유도 없는 것이다.


이 사건은 그 후로 삶을 살면서 나에게도 큰 변화로 다가왔다. 나에게 독서는 지식을 쌓는 생산적인 취미활동이고 게임이란 아까운 시간을 버리는 행위였다. 한데 게임에서 인생을 배우기도 하고 독서를 오락거리처럼 가볍게 즐기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그 시각을 받아들이고 나니 나 또한 독서를 바라보는 무게가 좀 가벼워졌다. 놀랍게도 그 뒤로 책을 읽는 것이 전보다 훨씬 즐거워졌다.



우리가 나눈 많은 이야깃거리 중 유일하게 금기시하는 대화 주제가 바로 정치이다. 아보씨는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슬그머니 다른 주제로 넘겨버린다. 어느 당을 지지하는지 말해주지 않으니 들은 바가 없다. 하지만 한때 자주 광화문에 촛불을 들고나갔다는 사실을 우연히 들어 알고 있지. 관찰하면 할수록 귀여운 사람이다.



글/그림 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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