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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Apr 11. 2018

여덞번째 요가이야기

비라바드라사나3



시간의 기억과 희망의 뿌리를 안고 보내는 오늘.





길은 언제나 그 곳에 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봄을 만나는 나와, 길을 그냥 지나치는 내가 있다. 매일 같지만 매일 조금쯤 다른 내가 있다. 그냥 지나쳤던 날이 있어서 가만히 멈춘 날에 감동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녹사평역에서 내려 요가원으로 걸어가다보면 항상 만나는 풍경이 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면 남산 타워가 있고, 쭉 뻗어있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계절을 만나게 된다. 자주 만나는 풍경은 변함없을 것 같지만 계절은 걸음을 서둘러 옮길 때가 많고 그것을 기억하는 나는 요즘 그 길에서 아침마다 봄을 만나고 있다. 아직 겨울 같은 봄, 안개가 많이 낀 봄, 먼지가 많아 남산타워가 보이지 않던 어떤 날의 봄, 비가 내린 후 투명한 바람이 부는 봄, 목련이 피는 봄, 여린 초록빛이 수줍게 올라오는 봄.

두 발을 모두 지면에 두고 동작을 할 때에는 양쪽의 균형을 생각하고 힘을 분배하게 된다. 그런데 한 발을 뒷쪽 허공으로 뻗어내고 나면 어쩐지 힘을 만드는 것은 지탱하는 다리인 것만 같고, 그래서인지 들고 있는 다리와 앞으로 펼쳐낸 팔이 마음에서 멀어질 때가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지면에 닿아있는 다리만 최선을 다해주면 나는 거기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것일까? 그럴리가 없다. 다리가 두 개인데, 그 중에 하나에만 모든 일을 다 하라고 하면 그 하나가 얼마나 힘들까.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모두 제 몫을 하고 있을 때 균형은 찾아온다. 다리가 두 개라면 둘 모두를 사용하고, 팔도 손도 두 개라면 전부 감각하고 있을 때 몸은 그 모든 것 안에서 중심을 잡는다.

중심을 지키며 단단해지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던 내가 있다. 그 때의 나는 시간이 흘러 내가 성장하면 언젠가 그게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휘청거리지 않고 단단하기만 한 것은 생명이 없는 것들뿐이라는 사실이다. 살아있다면 언제든 흔들릴 수 있고, 언제든 중심을 잃을 수 있고, 언제든 중요한 것을 잊게 될 수 있다. 요즘도 나는 종종 내가 가진 것을 잊게 될 때가 있다. 내가 가진 능력도, 내가 할 수 있는 말도, 나에게 왔던 소중한 기억들도 희미해지는 날이 있다. 나의 다리가 두 개라는, 태어나 지금껏 변함없었던 것을 잊게 되기도 하는 것처럼.

다시 기억하면 된다. 다시 기억하면 된다고 다독이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다가 그 마음에 밑줄을 긋는다. 세월이 흘러 멀어진 기억과 아직 여기에서 출발하지도 않은 시간들이 허공에 뻗은 발처럼 마음에서 멀어질 때면 여기에 존재하는 것조차 꿈같이 느껴진다. 현재는 중요하다. 현실에 뿌리내리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오늘의 나는 내가 지나보냈던 일들을 기억하고,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그리며 지금을 바라본다. 없지 않다. 분명 나의 내부 어딘가에 새겨져있을 시간의 기억과 희망의 뿌리들을 가만히 본다.

이제 막 움트는 계절을 바라볼 때 만나는 빛깔과 완연한 계절의 한가운데에서 마주치는 빛깔과 계절이 지나가고 잎들이 진 후에 볼 수 있는 빛깔이 다르다. 모두가 소중하다. 흔들린 기억도 지금의 흔들림도 중심을 잡다가 언젠가 흔들리게 될 날도 모두가 고맙다. 그 날들이 쌓여 나는 견고해진다.

비라바드라사나3에서 진짜 견고함을 만드는 것은 stop 버튼을 누른 듯한 내 모습이 아니라 유연한 마음으로 흔들릴 줄 아는 것, 흔들리다가 중심을 찾았던 날들을 기억하는 것, 앞으로 시간이 흐르며 또 흔들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내가 아는 것이다. 그 모두가 각자의 마음 자리에서 제 몫을 할 때 나는 더 안전한 마음이 된다.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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