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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Apr 18. 2018

아홉번째 요가이야기

아도무카스바나사나



하나 다음 둘, 셋




미련이 많은 기질이라고 생각했다. 오래전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을 한 후에 나는, 아주 오래, 꽤 오래, 친구들이 "이제 그만 좀 해." 라고 한참 이야기를 하는데도 이별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밤이 되면, 하려했으나 하지 못했던 말과 함께 하고 싶었으나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나를 찾아와서 내내 울곤 했다. 요가를 하기 이전, 연애에서 먼저 삶을 만났는데,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후에는 하려 했으나 못한 일들이 정해진 순서처럼 나를 찾아와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는 것'이 그렇다. 오래 생각했다. 왜 이렇게 매번 멀어진 다음 억울함과 비슷한 감정이 나를 찾아오는 거지?

생각으로만 하고, 실제로는 하지 못한 일들이 나를 울먹이게 만든다.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아주 단순하게, 그냥 한 번 해보는 삶을 살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었다. 그렇게 성실하게 즐거운 사람이 되기로 결정한 다음 나는 짧지 않은 여행을 떠났었고, 돌아와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그냥 한 번 해본 경험이 지금의 내 동력이 되고 있다. 여전히 성실하게 마음을 쓰려 하지만 때때로 게으른 마음과 손을 잡기도 한다. 그런 날에도 나는, 나를 긍정한다. 나를 미워하는 일에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 싶다고 마음을 꺼내든 다음부터 그 날 삼킨 마음을 혀끝으로 굴려본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많은 것을 바라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요즘, 오래 전에 바라던 번쩍이는 것들은 바라지 않게 되었으나 나답게 해낼 수 있는 즐거운 일들은 바라고 있다. 무언가를 바랄 때, 할 수 있는 가장 첫 번째 일이 무엇인지 잠깐 생각하고는 앞 뒤 재지 않고 시작해버린다. 즐거운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은 역시 아쉬운 일이니까 선뜻 무언가, 아주 사소한 것 하나를 해버린다. 오랫동안 공들여 시간 쌓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이런 일에 여전히 서투르다. 그래도 단숨에 해낼 수 있는 사소한 일들을 중간중간 끼워넣는 것이 스스로를 더 사랑할 수 있는 나만의 매뉴얼이 되었다. 행동이 빠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것을 알고 있으니 이제는 그런 나를 기다려줄 수 있다. 마음도 걸음이 느리다. 빨리 뛰어가라고 재촉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조금만 기다려주고 나면, 문득 찾아온 계절처럼 속도를 붙여 걸어나갈 것이다. 경험으로 알고 있다. 첫단추에 손을 올려 매듭에 단추를 끼우는 일부터 시작한다.

매트를 펴고, 발을 디디는 일 부터가 수련이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이 한다. 정말 그렇다. 때로 몸과 멀어진 느낌이 들 때면 매트를 펴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아도무카스바나사나를 한다. 가장 자주 만나던 친구에게 제일 먼저 손을 내미는 심정이 되어 동작을 만들고는 다음 마음을 기다린다. 손바닥이 서서히 깨어나면 팔의 근육들이 어깨 여는 것을 도와준다. 등의 감각들이 배와 골반으로 전달되고, 발바닥에서 올라온 힘들은 허벅지를 지나 손에서 올라온 힘들과 몸의 중심에서 마주친다. 우선 움직이고 나면 그 다음에는 좋아하던 동작들이, 부르기를 한참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줄지어 나를 찾아온다. 하나를 하였을 뿐인데 할 수 있는 동작들이 우르르 선물처럼 쏟아진다.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은 첫, 하나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나를 압도한다. 첫번째 동작으로 가장 사랑하는 아도무카스바나사나. 화려하지 않은, 누군가에게는 사소하게 보이고,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이 동작을 하고 나면 그렇게 깨어난 몸으로 다음 동작들을 만들 수 있게 된다. 하나가 있어야 둘도 셋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은 일들, 별것 아닌 것 같은 사소한 바람들을 하나씩 꺼내어 품에 안으면 번쩍거리는 것 위에 올라서 있는 것보다 더 반짝반짝한, 반짝임 그 자체인 시간이 채워진다. 찾아오는 일들의 첫번째 할 일 찾기에 재미를 느끼다 보니 조금은 가벼워진 시간을 만나게 되었다. 기질이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 변화는 행동에서 시작된 것이다.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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