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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May 02. 2018

열한번째 요가이야기

부장가사나



새로운 내가 되지 않아도 괜찮아.

그 때의 내가 거기에 있어서 다행이다. 그 시간을 지나보낸 내가 여기에 있어서 다행이다. 어렵게 지나간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을, 여기에서 고마워할 수 있다는 것이 마음을 동그랗게 한다. 지금 만나는 순간들의 연습을 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매끈하고 동그란 물체를 만지는 것처럼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상처가 거듭 덮이던 때가 있었다. 분명 힘들었을 텐데 힘들다거나 아프다고 이야기하고 나면 더 힘들어지거나 더 아프게 될까봐 몹시도 두려워 몸을 벌벌 떨며 혼자 울던 날들이 있었다. 그렇다. 나는 말을, 글을, 매우 좋아하지만 실은 조금 무서워하는 사람이다. 말과 글이 가지고 있는 힘을 믿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균형을 잃은 나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 도망을 다니면서 나는 괜찮다고 말을 하던 시간이었는데, 가슴부분이 너무 아프고 음식을 잘 먹지 못하게 되어서야 찾아간 한의원에서 한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진짜 괜찮다고요? 그거, 거짓말 아닙니까?" 나는 순순히, "그러네요, 거짓말 같네요." 라고 답했다. "사람이 화날 때엔 화를 내야 하는데 그걸 안내서 그렇게 아픈 거예요. 화도 내고, 울기도 하고, 그렇게 일 많이 하는 것도 좀 그만하고, 그래야지 나아요. 이 한약 먹는다고 낫는게 아니라." 그제서야 나는 끄덕였다. 지난 주말에 본 영화 이야기라도 하듯 말씀하셔서 나조차도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수긍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때엔 겁이 났던 것 같다. 위로받고 싶은 마음보다 훨씬 큰 마음이 있었는데, 그것은 모두가 나를 밝은 사람으로 기억했으면, 나는 늘 건강했으면, 내가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었으면, 그렇게 꽤 괜찮은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나는 나에게 무언가 다른 존재가 혹은 더 나은 내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해주지 못했다.

배를 바닥에 대고 엎드려서 부장가사나를 시작하면 자꾸만 먼저 가버리는 마음이 시선을 몸보다 위나 뒤로 옮기게 만들 때가 있다. 내 가슴은 아직 열리지도 않았는데 너무 먼 곳을 바라보면 숨이 찬다. 시간이 지나고 가슴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고 나면 어느새 나는 조금 더 멀리 바라볼 수 있는 몸이 되어 있다. 억지를 부리며 시선을 옮기지 않고 숨을 쉬면서 기다린다. 나는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 내 숨소리를 듣고, 내 시선을 알아차리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보되 너무 오래 고개를 숙이지 않고, 가슴이 향하는 곳으로 시선을 두고는 지금의 나를 바라본다. 바깥으로 향했던 시선은 어느새 나의 내부로 향한다.

'너는 너이기 때문에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 시간을 잘 지나보낸 너는 앞으로도 잘 해낼 것을 다름 아닌 내가 믿는다. 그리고 가끔 잘 해내지 못해도 내가 너를 응원한다.' 나에게, 진심을 다해 이야기를 건넨다.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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