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 드리워진 흑백

by 글담



카페에서 일을 하는데 자꾸만 눈이 감깁니다.

허겁지겁 먹은 점심 탓에 뒤늦게 찾아온 포만감이 잠의 여신도 함께 불렀나 봅니다.

아름다운 이의 시선이 등 뒤로 날아오는데 말이죠.


오드리 햅번은 왠지 흑백의 초상화가 어울리는 듯합니다.

그의 데뷔작이자 그 이름을 널리 알렸던 [로마의 휴일]도 흑백 영화이죠.

영화 속에서 그는 흑백만큼이나 감정의 희비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로마 곳곳을 돌아다니며

흑과 백을,

밝음과 어둠을 화면 곳곳에서 드러냅니다.

그 매력에 모두가 빠져들었던 게 아닐까요.


선명하게 흑과 백을,

빛과 어둠을 드러내는 프레임과 세상.

그 중간의 잿빛을 담은 광경.

오늘 바깥을 바라본 흑백의 풍경입니다.

먹구름과 거친 바람.

선명하던 세상의 색은 잠시 자취를 감추려 애를 씁니다.

[로마의 휴일]과는 사뭇 다른 흑백의 정경입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이 찬란한 빛을 뿜어내다가

서서히 잿빛에 가까운 색으로 바뀌는 것을 보는,

어떤 작가의 말처럼 ‘행운 또는 불행을’ 겪습니다.

다만,

찬란한 시간을 지켜보았던 행운이

허무한 시간을 마냥 바라봐야 했던 불행을 살짝이라도 가려주길 바라죠.

행운에 덧댄 인생을 기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돌이켜보니,

그것이 행운이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죠.

오늘은 그 행운이 저 먹구름에 막혀 닿지 않나 봅니다.

자꾸만 졸리기만 하는 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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