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기차역에서 어정쩡하게 남은 시간을 때워야 했습니다.
이럴 줄 알고 미리 쿠폰을 얻은 게 있어 스타벅스로 향합니다.
이 날씨에 시원한 바람을 쐬며 책이나 읽어야겠습니다.
사람들 생각은 다 비슷한가 봅니다.
매장 안은 빈자리가 없습니다.
저마다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잠시 망설이다가 딴곳으로 옮기는 게 더 힘들겠다 싶어 시선을 사방으로 돌립니다.
한동안 서성이다 자리가 나자 냉큼 앉습니다.
“이 쿠폰으로 어떤 메뉴라도 한 잔 마실 수 있는 거죠?”
“네, 고객님. 쿠폰 한번 찍어보시겠어요?”
시원한 망고바나나 음료를 먹고 싶던 차에 슬쩍 웃으며 쿠폰을 갖다 댑니다.
“망고바나나 주세요.”
“아, 고객님. 그것만 빼고 다 돼요.”
“네?”
모든 음료가 다 된다고 했는데,
하필이면 먹고 싶었던 음료를 콕 집어 그것만 안 된다고 합니다.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잠시 머뭇거립니다.
그렇다고 그 이유를 따지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차가운 음료 하나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책을 펼칩니다.
그러나 책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있어 멍하니 밖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서울역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지금은 박물관이 된 옛 역사가 눈에 들어옵니다.
건물의 미학을 논할 처지는 아니지만,
공간과 역사의 미학을 담은 그곳으로 시선이 자꾸만 향합니다.
마음도 함께 빼앗기니 사진으로 건물을 담으려 합니다.
스타벅스의 위치가 옛 역사의 사진을 찍기에 좋은 자리인 듯합니다.
마침 앉은 매장에서 앉은 자리에서 보니 시원한 통창 너머 옛 역사의 둥근 초록의 지붕이 눈에 들어옵니다.
1920년대에 지어진 그 시절 건축의 양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몇 달 전에도 이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 올린 적이 있죠.
한동안 책이 아니라 초록 지붕과 적갈색의 벽돌로 지은 벽을 바라봅니다.
어린 시절에 찾던 기차역을 떠올리고,
지나간 기억과 사람을 더듬어봅니다.
저마다 자신의 인생이나 타인의 삶, 혹은 세상을 바라보며 고개를 젓곤 합니다.
기대한 만큼의 모습을 볼 수 없을 때,
원하는 만큼의 소망을 이루지 못할 때,
사람들은 자신과 대상, 세상을 책망합니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살짝 발걸음을 돌려 나와 세상을 바라보면,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들어올지도 모릅니다.
혹은 보지 못한 어두운 그늘도 찾을 수 있겠죠.
서울역 박물관의 아름다운 모습을 찾은 것처럼 말이죠.
책을 한참 보고 있는데,
좀 전의 저처럼 서성이는 사람들이 주위를 오갑니다.
가득 찬 이 공간의 빈자리를 찾는 이가 차츰 늘어납니다.
자리를 비워줘야 할 때가 된 듯합니다.
마침 배도 고프고요.
더운데 새우완탕이 생각이 나 자리를 뜹니다.
하루를 마감할 때 떠올릴 음식이 있으니 오늘은 일을 좀 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