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 있어도 마음은 요동칩니다.
가만 있어도 온몸은 수분으로 가득 찹니다.
더운 여름날,
시시각각 영혼은 몸으로부터 벗어나려 합니다.
“잘 갔다 와!”
카페지기가 며칠 먼 길을 떠났습니다.
모처럼 마음을 쉬러 가는 길이니 마음 편히 다녀왔으면 합니다.
그곳에 가서 웃긴 거리의 사진을 찍어 보내는 걸 보니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나 봅니다.
텅 빈 카페에 앉아 있다가 문득 오늘 새벽에 보았던 시가 떠올랐습니다.
“실내엔 아지랑이처럼 음악이 피어오른다
고요하던 실내에 음악이 켜지면 실내는 그만큼 무거워질까
소리에도 무게가 있을까
흘러간 시간들은 어디에 쌓이는 걸까”
신철규 시인의 시집 [심장보다 높이]에 실린 ‘11월’이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마침 홀로 남은 카페에서 조용히 음악을 켜놓고 듣고 있자니,
카페 안이 살짝 무거워지는 듯합니다.
아주 작게 소리를 키운 음악이지만,
실내는 고요한 무게로 가득 채워지는 듯합니다.
바깥은 삶의 무게로 가득 채워지는 중이겠죠.
외로이 서 있는 불 꺼진 한낮의 가로등은 어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두워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으니까요.
가끔 고비를 만날 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별일 없을 때는 대낮의 불 꺼진 가로등처럼 조용히 있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카페 안의 음악처럼 다가오고,
카페 밖 삶의 무게로 존재를 드러냅니다.
흘러간 시간을 조용히 안으로 쌓고,
쌓이는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감당해내는.
바람이 제법 시원하게 붑니다.
어딘가에 쌓인 시간들을 날려보내는 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때의 인연과 추억은 그렇게 사라지나 봅니다.
시간이 흩어진 자리에 음악이 채워집니다.
어둠이 내리기 직전의 가로등은 조만간 불을 밝히겠죠.
때로 사유의 시간을 가져다주는 어둠은 좀처럼 만날 수 없습니다.
가로등이 불을 밝히면 어둠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내 안의 어둠은 보지 못한 채 짙은 어둠을 찾습니다.
내 안의 생각은 가다듬지 못하고 자꾸만 주변을 두리번거립니다.
아마도 쓰고 있는 글이나 검토 중인 원고, 읽고 있는 책 등 모든 게 순조롭지 않는 듯합니다.
그러니 생각의 시간을 달라고 하늘에 대고 혼자 중얼거리죠.
카페지기가 없는 틈을 타서 시원한 에이드나 만들어야겠습니다.
아, 레시피가 생각나지 않네요.
마침 부탁할 이가 있어 다행입니다.
머리를 비우고 몸 안의 열을 내릴 토마토바질에이드를 먹고 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