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를 보며 가을을 떠올립니다

by 글담



카페 옥상 정원을 굽어보던 태양은 어느새 구름에 휩싸였습니다.

오늘밤도 산책길은 수분 가득한 공기에 감싸인 채 나서야 할 듯합니다.

툭툭 떨어지던 빗방울도 어느새 그치고 대지는 말라버렸습니다.

끊임없이 들리는 메미 소리와 풀벌레 소리는 여름이 아직 한창이라고 말해줍니다.

그러니 더위를 탓하고만 있을 게 아닙니다.

열이 내 몸 안에 축적되는 동안,

머리로 그 열을 내보내는 순환의 지혜를 터득해야겠습니다.

조용히 책을 읽는 게 그러한 지혜의 방법 중 하나이겠죠.


어제도 한여름밤 산책을 나섰습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시간을 확인한 뒤에 나섰는데,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눅눅한 날씨입니다.

동네를 쭉 둘러 공원으로 들어섰더니,

아직 지지 않은 장미 몇 송이가 고개를 늘어뜨린 채 매달렸습니다.

한쪽에서는 어르신들이 담뱃불을 서로 붙여주며 담소를 나눕니다.

늦은 밤 정겨운 광경일 수 있지만, 공원에서는 금연인데.


슬쩍 둘러서 가던 길을 잠시 멈춥니다.

달빛인지 가로등 불빛인지 모를 빛에 비친 장미 때문입니다.

좀 전에 내린 빗방울일 테지만 왠지 눈물로 보이는 몇 방울을 머금은 하얀 장미.

장미는 뒤늦게 시들기 시작한 듯 가운데부터 햇볕에 타 들어간 흔적이 보입니다.

사실 장미의 시간은 이미 지나버렸죠.

그 눈물 때문일까요.

자신의 삶이 한순간일 따름이라는 것을 아는 듯,

자신의 운명을 짐작하는 듯 머금은 몇 방울의 눈물이 더 눈에 들어옵니다.

장미는 퇴락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이 밤을 지새웁니다.


서서히 사위어갈 때,

인생은 초라한 게 아니라 어쩌면 아름답지 않을까요?
단지 초라해지는 게 아니라,

영광의 나날을 하염없이 떠올리는 게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자유를 느낍니다.

타들어가는 삶이 메마른 장미의 아름다움처럼 보일 때,

인생은 쓸쓸한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겠죠.

그러고 보니 가을이 기다려집니다.

선선한 새벽녘 날씨를 느낄 때마다 가을은 곁에 온 듯한데,

동이 틀 때마다 아직 올 때가 아니라고 멀어지는 가을입니다.


그래도 기다립니다.

퇴락하고,

쓸쓸하고,

사위어가도 가을은,

가을은 슬며시 웃을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시원한 바람이 분다는 이유로.

그저 낙엽이 뒹군다는 이유로.

그래서 8월을 마음에 묻고,

9월의 달력을 펼칩니다.

아, 너무 이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