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끼는 것도 글쓰기 연습입니다.
요즘 은근히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이 있습니다. 원고를 쓰느라 책을 읽으며 필사한 것을 컴퓨터에 옮겨 놓지 못하고 미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필사를 이중으로 합니다. 처음 책을 읽을 때 한 번 하고, 필사한 것을 컴퓨터에 저장합니다. 꽤나 시간이 걸리는 과정입니다. 필사한 것을 컴퓨터에 옮기지 못한 채 쌓아두고만 있으니 언젠가 날을 한 번 잡아야 할 때가 올 듯합니다.
제가 재능기부를 하는 글모임이나 수업하는 강의에서 저의 이중 필사 이야기를 해주면 다들 흠칫합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죠. 물론 제가 하는 방식대로 꼭 할 이유는 없습니다. 제가 이중으로 필사를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머리가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방금 읽고 필사까지 해놓고도 페이지만 넘기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새머리를 가지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이죠.
머리가 좋지 않은 탓에 컴퓨터에 저장까지 하는 게 의외로 좋은 효과도 가져다줍니다. 글을 쓰는 동안, 뭔가 참고하거나 인용을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게 뭔지 생각이 날듯 말듯 하면 답답하고 환장해서 미칠 지경까지 가기도 합니다.
그때 필사의 데이터베이스는 구원의 동아줄이 되어 준답니다. 관련된 키워드를 넣어 검색을 하는 것이죠. 그럼 무슨 책의 몇 페이지까지 기록한 문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문구를 읽고 책을 다시 보면서 앞뒤 맥락까지 살펴보죠. 이렇게 확인하고 인용을 하거나 참고하게 되니 곡해의 위험을 피할 수 있습니다.
필사는 글쓰기를 배울 때 가장 많이, 또 먼저 하는 훈련이기도 합니다. <위대한 작가>라는 책의 저자 윌리엄 케인William Cane은 “어느 날 갑자기 허공에서 뚝 떨어진 위대한 작가라는 것은 없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갑자기 위대한 작품을 써내는 게 아니라 앞서 나온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보며 습작을 하고 자신의 작품을 구상합니다. 윌리엄 케인의 말은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배우라는 것이죠. 모방이야말로 가장 효과가 있는 글쓰기 방법이라고도 합니다.
거장들의 문체를 베끼고 흉내 내며 자신의 톤을 찾는 것은 가장 빠른 지름길이자 제대로 목적지로 가는 길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그 길은 찾기가 쉽습니다. 조금만 손을 뻗으면 구할 수 있는 책 한 권과 펜만 있으면 됩니다. 너무 찾기가 쉬워서 간과하는 것일까요? 이 길을 알려줘도 쉽게 찾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저 책을 읽으며 펜을 쥐고 있으면 됩니다. 이 간단한 훈련조차 하지 못하면서 글을 쓰겠다는 것은 헛된 욕심만 앞선 꼴이지 않을까요.
좋은 문장을 필사하는 것은 여러모로 도움이 됩니다. 메시지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새길 수 있죠. 그 중요한 메시지가 눈에 띌 수 있도록 한 ‘전달력’을 담아낸 문장의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굳이 필사를 하거나 밑줄을 긋는 것은 그만큼 나에게 강한 전달력을 가졌기 때문이죠. 그 힘을 배우고 훈련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글을 쓸 때 막히는 순간에도 필사는 훌륭한 조력자 역할을 합니다. 글감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문체를 떠올리게 하니까요. 저는 원고를 쓸 때 항상 책을 옆에 둡니다. 막힐 때 뚫기 위한 도구로 말이죠.
필사, 즉 베끼기는 영혼 없는 모방이 아닙니다. 나만의 스타일과 문장력, 전달력을 높이기 위한 응용의 훈련과정입니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 또한 습관으로 가지는 게 글쓰기에 좋습니다. 당연히 독서의 효과도 키울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필사입니다.
● 좋은 문장은 필사하세요. 메시지의 전달력이 어떻게 커지는지 알아야 합니다.
●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는 것은 그만큼 강한 전달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 표절의 베끼기가 아닌 작가 고유의 문장 톤, 즉 말투와 같은 어조를 눈여겨봐야 합니다.
● 문장의 ‘톤’을 눈여겨보면서 자신에게 맞는 톤을 찾습니다.
● 필사는 자신이 원하는 문체, 자신만의 문체를 만들기 위한 과정입니다.
● 책을 그대로 베끼는 게 아니라 ‘톤’을 흉내 내며 자신의 것을 찾습니다.
● 문장 톤의 감각을 잃게 되는 순간이 올 때, 내가 좋아하는 책을 펼칩니다.
● 필사한 내용을 컴퓨터에 저장해두면, 나중에 인용이나 활용의 글감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