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얼굴처럼 글을 대해야 하는데

by 글담



한바탕 쏟아지던 비가 잦아들고,

빗소리에 가려졌던 세상의 소리가 조금씩 울려 퍼집니다.

며칠 전 찍은 사진의 하늘을 다시 보니 먹먹하기만 합니다.

어스름을 뚫고 나무는 저리도 손을 뻗습니다.

뭔가를 잡으려 하기보다 뭔가를 염원하는 듯.


우중충한 날씨가 이어지니 까닭모를 심연으로 빠져듭니다.

그러다 카페에 육개월 된 아기와 부부가 찾아오니 금세 얼굴이 환해지네요.

까르르 웃는 모습에 넋이 나가 까꿍으로 화답하고,

칭얼거리는 울음에 나도 모르게 애달프게 바라봅니다.

웃고 울고,

꺼릴 것 없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아기의 얼굴.

오랫동안 짓지 못했던 나의 얼굴.

문득 세파에 찌든 얼굴을 쓰다듬다가 하늘을 봅니다.

먹먹한 하늘을.


조금씩 나의 생각을 저 나뭇가지에 얽어매고 하늘에 매달아 봅니다.

요즘 들어 부쩍 글에 대한 어지러운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녀서요.

제임스 조이스는 자신의 단편 [가슴 아픈 사건]에서 글쟁이들을 이렇게 말하죠.

‘연속해서 60초도 생각하지 못하는 엉터리 글쟁이들’이라고요.

모든 글쟁이들을 그리 말하는 건지,

아니면 속물적인 글쟁이들을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글을 쓰다가 무심코 집어든 책의 한 구절에 가슴이 서늘해졌습니다.

나는 얼마나 생각을 하고 글을 쓰는 걸까요.


글을 쓰기도 하고, 또 검토도 하는 탓에 많은 글을 봅니다.

간혹 나의 글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글에서도 제임스 조이스의 저 추상 같은 말이 떠오르곤 하죠.

오늘 한 저자가 전화를 했는데,

글쓰기의 곤혹스러움을 토로했습니다.

자신은 이렇게 한 권 쓰는 데도 힘든데,

어찌 그걸 직업으로 삼았느냐고 말이죠.

뭐, 목구멍이 포도청이죠.

어찌 하다가 이 길로 접어들었는데,

다른 길은 쉽게 보이지 않네요.

더 파고들어야할까요?


자신의 글과 마주하는 것은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죠.

그래서 빤히 자신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듯 바라봐야 합니다.

그렇지만 쉽지 않습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눈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용기가 오늘 더 필요한 듯합니다.

글이 잡힐 듯 잡히지 않거든요.

자꾸만 피하고 널부러지려고 하네요.

타고난 게으름 탓일까요.

순진무구한 아기의 얼굴처럼 글을 대할 때가 있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