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비가 내리는 바람에 밤중 산책을 가지 못했습니다.
한적하게 동네와 공원을 돌아다니려고 밤중 산책을 즐기는데,
낮에는 그리도 화창했던 날씨가 밤이 되자 확 바뀌어버리더군요.
그러다 오랜만에 비가 오지 않는 밤을 맞아 산책길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밤 하늘을 바라보니 어둑한 구름이 검은 하늘을 잿빛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언제 비가 올지 몰라 바삐 걸음을 옮깁니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들어선 공원은 사위가 고요합니다.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인지 음악소리와 간간히 자동차 소리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발걸음마다 더욱 집중하고 혹여라도 뭔가 볼 게 없는지 살핍니다.
걷고 살피고 또 생각하는 시간인 산책길입니다.
그러다 문득 하루 전에 한 여고에서 수업한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서평이란 독후감과 달라. 자신이 읽은 책과 대결하면서 사유를 통해 지식과 의미를 생산하는 거야.”
그날 아침에 읽은 신문에서 누군가 한 말을 인용하여 서평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어려운 말은 각색을 해서 설명해주었고,
학생들은 책을 읽는 행위의 무게를 느끼는 듯했습니다.
그 무게가 부담이 아니라 진정성으로 다가갔기를 바랄 뿐입니다.
학생들에게 서평의 의미를 설명했지만,
정작 나는 죽비를 맞는 기분이었지요.
이 기사 구절을 읽을 때 책 읽는 행위의 의미를 새삼 떠올렸었습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작가와 책을 향해 대결을 펼쳤는지,
또 얼마나 사유를 하고 지식과 의미를 생산했는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참 게으른 독서를 하고 있다는 부끄러운 생각에 새삼 쓴웃음이 나왔네요.
장미 공원 한가운데를 지나가는데,
그토록 많던 장미가 어느새 자취를 감췄습니다.
장미의 시간이 지났으니 어쩔 수 없죠.
한 걸음 또 한 걸음 바삐 움직이는데,
저만치 붉은 점이 몇 개 눈에 띕니다.
아, 아직도 살아남아 붉은 자태를 드러내는 장미.
자신의 시간이 다했음에도 운명을 거스르고,
운명은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하고,
그랬을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장미는 알려줍니다.
시간과 대결하고,
보는 이에게 사유를 제공하고,
존재의 의미를 떠올리게 해주는 장미입니다.
내가 게으르게 책을 읽는 것보다 한층 더 높은 존재의 가치를 보여주네요.
장미보다 못한 존재감을 자각하고 잠시 발걸음을 멈춥니다.
장미가 또 한 번 나에게 죽비를 때린 셈입니다.
그렇다고 아프거나 서글프지는 않습니다.
나를 일깨워준 장미와의 만남이 즐거웠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