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 햇살이 뜨거워도 바람은 달궈진 몸과 마음을 식혀줍니다.
가을은 햇살보다 바람을 타고 먼저 다가옵니다.
한낮 산책은 따사로운 햇살과 구름이 따라오며 갈라진 마음의 틈을 메웁니다.
한밤중 산책도 어느새 쌀쌀한 날씨에 놀라지만 뺨을 스치고 가는 바람에 열기 가득한 마음을 달랩니다.
집 근처 공원에는 꽃무릇이 활짝 피었다고 여기저기서 알려줬지만,
코앞에 있는 곳보다 딴 동네로 오가다보니 미처 그 향연을 보지 못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보러 갔더니 어느새 꽃은 지고,
그나마 남아 있던 꽃들도 생을 다한 듯 오므리고 있더군요.
또 한 번 계절이 돌아오면 볼 수 있을 테지만,
현재의 시간은 되돌릴 수 없을 테죠.
현재의 시간이 주는 감흥도 느끼지 못한 채 순간을 흘려 보냅니다.
시간이 이리 흘러가는 게 아쉬운 걸 보니,
뭔가 제 자신이 미흡하다고 여기나 봅니다.
지금 하는 일이,
지금 사는 삶이,
지금 맺는 관계가 흔들릴 때마다 시간을 부여잡고 싶습니다.
어쩌면 자신을 믿지 못하여 생기는 불안일 수도 있겠죠.
스스로 믿지 못하는 이가 타인을 믿을 리도 없습니다.
불안의 덫에 걸려 안절부절할 뿐이죠.
자신을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신뢰하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설령 아픈 상처를 주고 돌아서는 사람이 생겨도 자신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언제든지 일어나죠.
그럴 때마다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힘은 결국 자신에게 있습니다.
아픔을 겪고 품어내는 것은 그만큼 삶의 밀도와 짙은 여운을 남깁니다.
이제 자신의 시간을 다해가는 꽃무릇은 시간의 숙명을 조용히 받아들입니다.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인간의 시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관조의 시간을 가지다가 제 시간을 마무리합니다.
주고받는 아픔이 인생이라 하지만,
위기와 좌절이 삶과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지만,
때로 흘러가는 시간의 무념을 바라보는 것도 인생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도 있겠죠.
매번 위험과 절망의 시간만을 보낸다면,
스러지는 영혼을 일으켜 세우는 게 힘들 테니까요.
자신을 믿는 것만큼이나 꽃무릇의 시간도 가졌으면 합니다.
부딪히고 부딪치는 것만큼이나 관조할 수 있는 여유를 말이죠.
이 둘의 시간을 엮어낸다면 인생은 풍요보다 아름답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