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책이나 볼까.”
글 작업이나 다른 일을 하기 전에 습관처럼 책을 먼저 펼쳐 듭니다.
갑자기 자리에 앉아 일에 집중하는 게 잘 안 되기 때문에 생긴 버릇입니다.
그런데 가끔 책부터 꺼내 든 게 살짝 후회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하필이면 책 속의 이야기에 빠지는 걸 느낄 때입니다.
이러다가 오늘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책으로 도피할까 봐 슬슬 불안해지기도 하죠.
어제가 그랬고, 오늘도 그러합니다.
잠시 수정해야 할 원고로 눈길을 돌리지만,
얼마 못 가 다시 책장을 넘기곤 합니다.
손에서 놓기가 힘든 책을 읽다가 원고를 보다가 시계를 쳐다봅니다.
그러다 바깥이 붉게 물들어지는 시간의 강을 보러 밖으로 나섭니다.
노을 한가운데를 부유하는 추억을 곱씹으면 책에서 벗어날까 싶어서요.
자줏빛이 붉은색으로 짙어질 때,
책 속의 이야기는 사라지기는커녕,
나의 기억과 맞물려 추억을 소환합니다.
하필이면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에 책 속으로 차츰 더 빠져들 뿐입니다.
눈부신 노을이 가린 땅의 모든 실루엣처럼
기억은 채색이 또렷한 장면이라기보다 윤곽만이 드러나는 회상이 되어 떠오릅니다.
한때는 그때의 아픔과 슬픔, 기쁨과 분노마저 함께 떠오르던 기억이었습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무심한 흑백사진이 되어 박제된 기억으로 남아버렸습니다.
눈물 한 방울 흘리는 것조차 힘든 마음인가 봅니다.
연휴의 마지막날,
아마 원고를 보는 게 싫었나 봅니다.
그냥 널부러져 있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니 괜한 상념에 빠진 것일 수도.
단골 카페 주인장은 휴일이 이어지니 손님은 없을 것이라며 하루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그가 내뱉는 푸념에 쓴웃음을 지으며 문 닫는 그날은 어디로 가야 하나 하고 책을 펼칩니다.
아, 책으로 가야 할까요?
아니면 밀린 원고 수정을 마저 해야 할까요.
쓸데없는 고민을 할 수 있는 휴일의 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책을 덮어야 할 때인 듯합니다.
다시 한 번 노을을 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