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람이 일그러진 달과 구름을 덧칠할 때

by 글담

산책하다가 하늘을 보니 일그러진 달과 달무리,

붓칠한 듯한 구름이 몽환으로 떠 있습니다.

구름이 흘러가는지, 뒷걸음을 치는지 알 수 없는 정적의 시간 안에 서 있습니다.

적요한 한밤의 산책은 이렇듯 하늘에 그린 그림을 볼 수 있어 좋습니다.

그리움을 그리움으로 채우듯이,

외로움을 외로움으로 달래듯이,

가을밤 하늘은 덧댄 붓칠로 달과 구름을 그려 놓아 한껏 운치 있는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가을의 시간이 보여주는 하늘을 보니 지나간 시간은 어느새 잊힌 듯합니다.

그래도 될까요.


어느덧 두 자리 숫자로 바뀐 세월의 흐름에 마음이 다소 초조해집니다.

올해 무엇을 했는지,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늠해봅니다.

다소 이른 생각일지 모르지만 날씨가 쌀쌀해져서 나도 모르게 날짜를 세었네요.

이르다고 하지만,

되짚어보고, 또 가늠하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고 나를 성찰하는 시간입니다.

흘러갔다고 망각하고,

오로지 미래만 바라본다고 해서 삶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지요.

세상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흘러가는 시간은 지나간 시간을 지워버리는 듯합니다.

흘러간 시간을 지우지 않는 것은 지나간 기억일 테죠.

기억은 현재와 손을 잡고 생명을 이어갑니다.

과거를 돌아보는 게 비단 과거에 발목을 잡히는 게 아니죠.

기억해야만 하는 과거를 자꾸만 잊으라는 것도 폭력입니다.

이 시대는 그러한 폭력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집니다.

자꾸만 뒤를 되돌아보자는 게 아니라,

더 나은 현재를, 또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 기억은 오늘의 시간과 함께해야 합니다.


다시 하늘을 봅니다.

붓칠한 구름은 그새 또 모양을 바꾸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아마도 바람 붓이 덧칠을 자꾸만 하는 듯하네요.

바람이 그려놓은 풍경에 이마를 바투 대고 잠시 두 눈에 담으려 합니다.

가을밤이 그려놓은 그림 감상에 발걸음을 멈춘 채 세월을 헤아립니다.

가을밤이니까요.